저명한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1928~2016)는 1980년 출간한 《제3의 물결》에서 정보혁명의 전개와 정보화 사회의 도래를 예견했다. 원재료와 노동이 결합하는 산업시대의 경제 활동이 정보와 지식 기반으로 전환된다는 시각이었다. 우리나라 기업들에는 1980년대 중반부터 컴퓨터와 휴대폰이 보급되면서 체감되기 시작했다. 사회경제 전반의 문명사적 변화인 정보혁명의 광범위한 개념을 기업들은 산업구조 변화와 미래 전략 방향성의 실질적 차원에서 규정할 필요가 있었다. 이런 측면에서 정보혁명은 ‘정보산업의 태동 및 기존 산업의 정보화 혁신’으로 정의됐다.
먼저 1단계로 컴퓨터, 휴대폰, 반도체, 초고속 통신장비 등 정보산업이 태동한다. 2단계는 정보기술 확산으로 기존 산업의 정보화 혁신이 진행된다. 기업 전략 관점에서 정보산업 태동기에는 미래지향적 사업 포트폴리오 재편이 핵심 과제이고 확산기에는 기존 사업에 정보기술을 접목하는 경영 혁신이 부각된다. 실제로 태동기에 정보산업 진출에 성공한 기업은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확산기에는 이메일, 그룹웨어, 업무과정 재설계(BPR·business process re-engineering) 등이 기업 운영의 근간으로 도입됐다.
이런 관점을 18세기 중반 산업혁명에 대입해도 동일한 맥락이다. 증기기관의 개념적 시제품은 1663년에 출현했지만 상업용은 1776년 제임스 와트(1736~1819)가 발명했다. 1단계로 증기기관 및 관련 부품산업이 성장하고, 2단계로 증기기관이 기존 산업으로 확산되면서 산업혁명이 본격적으로 전개된다. 1807년 미국의 로버트 풀턴(1765~1815)이 상업용 증기선을 개발했고, 1825년 영국의 조지 스티븐슨(1781~1848)이 증기기관차를 실용화했다. 당초 석탄광 갱도에 차오르는 물의 배수용이었던 증기기관은 기존 운송, 물류, 제조업과 접목되면서 혁명적 변화를 일으켰다.
오늘날의 디지털 격변도 비슷한 양상이다. 1단계로 인공지능(AI), 빅데이터 분석, 클라우드 등의 디지털산업이 태동·성장하고 2단계로 기존 산업으로 확산되는 흐름이다. 이런 디지털 기술 확산의 속도는 산업마다 차이를 보인다. 초기에는 인접 산업인 통신, 미디어 등으로 전파됐다가 점차 유통, 물류, 금융, 제조 분야로 범위를 넓혔다. 이런 디지털 격변은 올초 중국에서 발원한 코로나19로 인해 더욱 가속화됐다.
이런 측면에서 2020년을 결산한다면 디지털 격변의 2단계가 본격적으로 개막하면서 아날로그 질서가 디지털 패러다임으로 전환되는 변곡점으로 평가된다. 산업 전반적으로 기존 오프라인 아날로그 사업자들이 정체하고 신생 온라인 디지털 사업자가 대거 약진했다. 또 전형적인 아날로그 생활밀착형 사업인 음식, 식재료, 세탁 부문까지 디지털 격변이 급속하게 진행됐다. 자영업 수준의 소규모 식당과 전통시장의 가게조차 플랫폼을 경유한 온라인 매출에 따라 명암이 교차한다. 나아가 코로나19 방역을 위한 대면접촉 제한으로 원격교육, 재택근무 등이 강제적으로 시행되면서 공교육, 공공서비스 등 자생적 변화와는 상대적으로 거리가 있던 부문도 디지털 격변의 영향권에 편입되고 있다.
올해를 기점으로 디지털 격변은 기업의 전략적 차원에서 선택이 아니라 필수이고, 방향이 아니라 속도의 차원으로 전환됐다. 기업 규모와 업종을 불문하고 각자의 입장에서 신속하게 현실적 대응 방안을 수립하고 내외부의 가용한 자원을 총동원해 디지털 격변의 물결에 합류해야만 미래 생존이 가능하게 됐다.
1990년대 정보혁명의 전환기에 사업 포트폴리오도 재편하지 못하고 정보기술에 기반한 업무 혁신에도 뒤처진 기업은 퇴조하는 운명을 맞았다. 마찬가지로 2020년은 디지털 변화를 이해하고 대응하는 역량에 따라 기업들의 성쇠가 판가름나기 시작하는 분기점으로 기록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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