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2월 한국과 베트남의 관계는 위기에 처했었다. ‘공든 탑’이 무너질 듯 아슬아슬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양측의 감정선을 일촉즉발까지 몰고 갔다.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여행지인 다낭에서 발생한 ‘반미(바잉미가 베트남 발음에 더 가깝다) 사건’은 양국 SNS에서 확대재생산되며 오해와 편견을 낳았다.
코로나19가 일상화돼버렸고, 한국과 베트남을 오가는 여행길도 막혀버린 요즘 베트남 사람들의 한국과 한국인에 대한 인식이 궁금했다. 한국언론진흥재단과 함께 하노이에 거주하는 언론인, 직장인, 교사,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화상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들은 공통적으로 말했다. “다낭의 바잉미 얘기를 꺼내는 베트남 사람들은 본 적이 없다”고 말이다. 전지구적인 팬데믹으로 인해 가볼 수 없는 나라가 돼 버린 한국에 대해 그들의 동경은 더 커져가고 있는 듯 보였다. 이번 인터뷰는 11월 한 달에 걸쳐 진행했다. 총 15명이 인터뷰에 응했다. 한화상의 한계상 한 명당 1~2시간 가량의 시간이 소요될 정도로 꽤 힘든 작업이었다. 그들의 한국과 한국인에 대한 진솔한 얘기를 들어보자.
레투하(LE THU HA, 1984년생)는 베트남 유수의 은행인 비엣틴뱅크에 근무 중인 여성이다. 하노이의 은행원들은 베트남 최고 엘리트 그룹 중 하나다. 국영은행이라는 특성상 베트남 경제의 흐름을 누구보다도 잘 들여다볼 수 있는 위치에 있다. 경제적으로도 풍요로운 편이다. 베트남의 유명 여성 기업인 중에선 은행 출신들이 꽤 많다. 하노이 최초의 골프장인 킹스아일랜드 골프클럽(옛 동모CC)의 여주인이 그런 케이스다.
투하씨는 ‘한국에 관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작지만 발전한 국가”라고 답했다. 그는 한국인에 대해 “인내심기 강하고 열정적”이라며 “이런 기질 덕분에 자원이 풍부하지 않은 농업 국가가 선진국에 올랐다”고 말했다. 부정적인 측면을 꼽아달라고 하자, 그는 “경쟁이 너무 심한 사회”라며 “교육을 비롯해 직장 생활, 정치, 연예산업, 그리고 어른부터 어린이까지 경쟁이 치열한 것 같다”고 말했다.
투하씨의 한국, 한국인에 대한 이미지는 베트남인들이 스스로에게 갖는 관념의 반대면이라고 할 수 있다. 하노이는 베트남의 주류들이 사는 곳이다. 그들은 중국과의 오랜 독립 전쟁끝에 스스로 자유를 쟁취했음에 강한 자부심을 느낀다. 베트남 사람들 역시 중국 못지 않게 점차 대국 의식을 갖고 있다. 동남아시아에선 옛 버마족인 미얀마, 동남아 민주주의의 원류라 자부하는 인도네시아와 함께 베트남이 스스로를 대국이라 인식한다. 한국에 대해 ‘작은 나라’라는 관념이 머리에 박혀 있는 것은 이런 배경에서다.
베트남 대도시의 여성들은 남자들이 하릴없이 놀거나 도박에 중독되는 일들을 수없이 봐왔다. 그들은 자신의 남편일 수도, 아버지일 수도 있다. 이런 점에서 한국인의 부지런한 기질은 부러움의 대상이 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경쟁에 관한 한 베트남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거부감을 보인다. 드라마나 유튜브를 통해 바라보는 한국의 일상에서 경쟁을 부정적인 이미지로 꼽는 이유다.
1984년생으로 초등학교에 다니는 자녀를 둔 투하씨는 자녀에게 한국어를 필수로 가르친다. 그녀에게 한국은 아이의 미래를 위해 빠져서는 안 될 요소다. 하지만 투하씨 본인은 막상 한국에 관해선 막연한 이미지만 갖고 있을 뿐이다. 한국 상품을 어느 정도 사용하냐는 질문에 그는 “일본, 독일에 이어 한국산 제품에 호감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일본, 독일 제품과 비교해 한국산이 어떤 장,단점이 있는 것 같냐는 질문에도 그는 “휴대폰을 비롯해 한국 제품을 써 본적이 별로 없다”면서 “한국 제품하면 예쁜 디자인과 적당한 가격이 떠오른다”고 했다.
베트남에서 1980년대생은 사회의 여론 주도층이라고 할 수 있는 계층이다. 그들은 도이모이 개혁 이후에 태어났다. 어린 시절 사회주의에서 시장경제로의 전환에 따른 고통을 고스란히 감내했던 세대다. 80년대생으로 김앤장에서 변호사로 오랫동안 활약 중인 레응옥뚜안(여옥준)은 자신의 어린 시절을 이렇게 회상했다. “초등학교 때 아버지와 형을 따라서 농번기 때면 아이스크림 가방을 매고 동네방네 팔러 다녔던 기억이 생생하다”고 말했다. 그의 아버지는 학교 교사였지만 집에 TV 하나 없을 정도로 생활고에 시달렸다. 베트남의 80년대생들은 어떤 세대보다 강인하고, 부지런하며, 자신의 삶을 스스로 개척하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한국으로 치면 산업개발 역군으로 활약했던 1950~60년대생과 닮았다. 아직 이들에게 한국은 부러움의 대상이긴 하지만, 일본 독일 미국 등에 비하면 일류는 아니다.
베트남과 한국의 관계에 대해 투하씨는 “정치에 대해 관심이 별로 없는 편”이라면서 “양국 정상 간 만남이 뉴스를 통해 방송되면 일반 사람들은 한국에 대해 더욱 돈독한 감정을 느낀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베트남과 가까운 나라를 꼽아달라는 질문에 “러시아, 중국, 미국과 베트남의 관계에 비하면 한국과 베트남 관계는 아직 오래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1984년생으로 도지(Doji)그룹 투자팀에서 근무하고 있는 응엣 녓 밍(Nguyen Nhat Ming, 남성)씨도 한국에 대해 막연한 호감을 갖고 있긴 하지만, 실제 제품 구매 등에선 적극적이지 않다는 점을 보여줬다. 도지그룹은 금 등 귀금속 거래로 부를 쌓아 부동산 부문으로 진출한 베트남 대표 재벌이다. 베트남 사람들은 중국 못지 않게 금에 대한 애착이 강하다. 베트남 언론엔 벼락 부자가 된 지방의 토호들이 자신의 집을 온통 금으로 도배해 비난과 부러움을 한꺼번에 사고 있다는 기사가 심심치 않게 나온다. 하노이 도심 한복판에 있는 도지그룹 본사꼭대기층엔 밀실처럼 마련돼 있는 레스토랑이 유명하다. 최첨단 음향기기와 함께 산해진미가 제공되는 곳으로 베트남 기업들의 밀실 문화를 엿볼 수 있다.
녓밍씨는 한국에 관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으로 김치와 매운 음식을 꼽았다. 한국의 빠른 경제 발전과 패션, K팝 등에 대해선 긍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부정적인 측면을 꼽아달라는 질문에 그는 의외로 한국 농산물을 지적했다. “제품의 다양성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한국산 제품에 대해서도 녓밍씨는 “합리적인 가격과 시장 수요를 감안한 빠른 변화는 한국 제품의 장점”이라면서도 “기초에서 많이 벗어나 일정 시간이 지나면 기능이 떨어진다”고 꼬집었다. 녓밍씨처럼 하노이 사회의 주류 계층이 여전히 일본, 독일산처럼 내구성이 강한 제품을 우선시한다는 점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녓밍씨는 사회주의 국가인 베트남의 엘리트층답게 신종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대응하는 ‘K-방역’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시각을 보였다. 그는 “과도한 민주주의가 적절한 방역 조치를 늦췄다”고 평가했다. 베트남은 봉쇄에 가까운 극단적인 방역책으로 현재까지 확진자 제로를 유지하고 있다. 다낭에서 확진자가 나왔을 때도 도시를 봉쇄하고, 2~3주간 사실상 다낭의 모든 경제 활동을 중단시켰다. 한국 등 민주주의 국가에선 불가능한 방역 조치다. 다만, 녓밍씨는 “(다낭 반미 사건 등) 코로나19로 인한 한국에 대한 부정적인 얘기는 모두 잊어버렸고, 그로 인해 부정적인 이미지가 생기지도 않았다”고 잘라 말했다. 이어 그는 “한국 기업이 베트남에서 투자하고 창업활동을 하는 것 자체가 양국 간 관계를 돈독히 하는데 최고의 효과”라고 강조했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
*본 기획물은 언론진흥기금의 후원을 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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