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법 개정안, 기업규제 3법(공정경제 3법) 등 쟁점 법안과 관련해 입법 속도 조절에 들어갔다. 일단 법적 처리 시한이 얼마 남지 않은 내년도 정부 예산안을 야당과 합의 처리하는 데 주력한다는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당이 ‘입법 독주’ 비판을 피하기 위한 명분 쌓기에 나섰다는 분석이 나온다.
국회 정보위원회는 27일 열린 전체회의에서 국정원법 개정안을 상정하지 않기로 합의했다. 민주당은 당초 전체회의에 법안을 상정한 뒤 곧바로 통과시킨다는 방침이었다. 지난 24일 열린 정보위 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도 야당의 대공수사권 이관 반대에도 불구하고 단독으로 개정안을 처리했다.
그러나 전체회의에서는 국가정보원 예산안만 처리했을 뿐 대공수사권 이관에 대해서는 야당과 추가 논의가 필요하다며 법안 처리를 미뤘다.
민주당은 이에 앞서 25일과 26일 연이어 열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제1소위원회에서 공수처법 개정안을 논의했으나 처리하지는 않았다. 함께 법안심사소위에 올라온 상법 개정안도 처리를 미뤘다.
민주당이 ‘거대 여당의 입법 독주’라는 비판 여론에 대한 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해 입법 속도를 늦춘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과거 ‘부동산 세제 3법’이나 ‘임대차 3법’을 단독처리하며 전·월세난에 대한 비난을 한몸에 받았던 경험이 반영됐다는 것이다. 야당의 입법 참여를 촉구하면서 최대한 명분 쌓기에 나서다가, 정기국회 막판에 무더기 입법 처리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민주당 소속인 윤호중 법사위원장은 이날 “어제와 그저께 이틀 동안 법안제1소위가 법안 심사를 했지만 야당 측 소위위원들이 불참해 의결을 못했다”고 말했다. 윤 위원장은 “이번 정기국회에 주요 법안들과 특히 공수처법 개정안을 처리하기 위해서는 소위 일정이 추가로 필요하다”며 “여야 간사 간 협의하되 합의가 필요한 것은 아니니 다음주 중 소위 일정을 한 번 더 잡아달라”고 요청했다. 다음 소위에서는 야당의 동의가 없더라도 단독 처리를 강행할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되는 발언이다.
일각에서는 여당이 한국판 뉴딜 등이 포함된 내년도 예산안을 우선 처리하기 위해 쟁점 법안 처리를 뒤로 미뤘다는 분석도 내놓고 있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한 직무배제 등의 조치로 인해 여야가 극한 대립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쟁점 법안을 통과시켜 야당을 자극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내년도 예산안 법적 처리시한은 다음달 2일이다.
조수진 국민의힘 의원은 “독선과 아집으로 독설을 퍼붓는 윤호중 법사위원장의 사과가 선행돼야 입법 관련 논의가 가능할 것”이라며 “임대차 3법처럼 자신 있다면 규제 3법과 국정원법 개정안 등을 단독처리해 보라”고 말했다.
이동훈 기자 lee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