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통죄 없어졌으니 망신이라도 당하는 꼴을 봐야 분이 풀릴 것 같습니다."
30대 남성 A 씨는 최근 우연히 아내 B 씨의 휴대전화 메신저를 통해 외도 정황을 눈치챘다. 이후 흥신소를 고용해 사진과 동영상 등을 모으는 한편 고가의 비용을 지불해 휴대폰을 몰래 해킹하기도 했다. 그뿐만 아니라 아내의 차에 위치 추적장치를 달고 도청기를 설치하는 등 증거 수집에 몰입했다.
이후 A 씨는 이렇게 모은 증거들을 B 씨의 가족과 지인들에게 무차별적으로 뿌리며 외도 사실을 알렸다. 이 과정에서 심지어 외도 사진과 영상을 문자와 모바일 메신저로 퍼트렸다.
A 씨는 이에 그치지 않고 B 씨와 상간남의 직장에 찾아가서 알리겠다고 하고 있다. B 씨는 '명예훼손죄로 고소하겠다'고 했고 A 씨는 '불륜은 사실인데 무슨 문제냐'고 맞서며 아내와 상간남에게 복수하겠다는 입장이다.
현행법상 A 씨의 이 같은 행위는 형법상 명예훼손죄에 해당하기 때문에 주의가 요구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법알못(법을 알지 못하다) 자문단인 이혼전문 이인철 변호사는 "사실을 적시한 경우에는 2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500만 원 이하의 벌금, 허위의 사실을 적시한 경우에는 5년 이하의 징역이나 1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게 된다"면서 "형법에 따르면 명예훼손죄는 허위 사실은 물론이고 진실한 사실을 적시한 경우에도 처벌된다"고 강조했다. 다만 사실을 적시한 경우에 그 사실이 진실한 사실로서 오로지 공공의 이익에 관한 때에는 처벌하지 아니한다고 명시돼 있다.
사실 적시 명예훼손에 대한 불만은 청와대 게시판에까지 번졌다.
불륜을 저지른 남편과 상간녀로 인해 고통받고 있다는 C 씨는 23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가정이 파탄 나고 내 인생이 망가진 상황에서 평생 상처를 떠안고 살아가야 하는에 이에 상응하는 처벌과 보상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면서 "사실적시 명예훼손죄가 없어져야 한다"고 울분을 토했다.
C 씨는 "간통죄가 폐지됨으로써 위자료 책정은 더 낮아졌다"면서 "증거수집과 관련한 수사기관의 개입이 없어지면서 증거 입증을 하기도 어려워졌고 그로 인해 되려 주거침입이나 명예훼손과 같은 역고발을 당하는 등 피해자를 지켜주고 보호해 주는 법은 그 어디에도 없다. 오히려 가해자를 보호하는 법으로 피해자를 두 번 죽이는 모순이 벌어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C 씨는 "가정은 나라의 근간이며 자녀를 키우게 하는 테두리며 어른이 가져야 하는 책임과 의무며 사회적인 약속이다"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현실에서는 피해자를 어루만져 주고 보호해 주는 법은 어디에도 찾을 수 없고 가해자의 인권만 보호되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간통죄 폐지 이후 불륜자의 명예를 지켜주는 악법인 '사실적시 명예훼손'을 없애달라"면서 "이미 피해자의 명예는 불륜자로 인해 참을 수 없을만큼 더럽혀졌는데 그 사실을 말하는 것이 어째서 명예훼손이며 형사처벌감인가"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전 세계에서는 명예훼손을 형법상 범죄로 처벌하는 국가는 극히 일부로 알려져 있고 특히 독일, 프랑스, 오스트리아, 스위스, 일본 등은 사실 적시 명예훼손 처벌 규정이 있지만 적시된 내용이 사실인 경우 처벌을 면할 수 있는 규정을 두고 있으며 이에 유엔(UN) 총회 산하 유엔인권이사회 등 다수의 국제인권기구는 지속적으로 우리 정부에 명예훼손 행위에 대한 형사적 처벌을 철폐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인철 변호사는 법에서 정한 전파 가능성에 대해 "대법원은 최근 명예훼손죄의 공연성에 관하여 개별적으로 소수의 사람에게 사실을 적시하였더라도 그 상대방이 불특정 또는 다수인에게 적시된 사실을 전파할 가능성이 있는 때에는 공연성이 인정된다고 일관되게 판시했다"면서 "다수의 사람에게 사실을 적시한 경우뿐만 아니라 소수의 사람에게 발언하였다고 하더라도 그로 인해 불특정 또는 다수인이 인식할 수 있는 상태를 초래한 경우에도 공연히 발언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아울러 정보통신망 이용 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에 대해서도 소개했다.
이 변호사는 "인터넷, SNS 등에 이러한 사실을 퍼트릴 경우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죄로 처벌받게 된다"면서 "사람을 비방할 목적으로 정보통신망을 통하여 공공연하게 사실을 드러내 다른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 원 이하의 벌금형으로 처벌받게 된다"고 경고했다.
이어 "사실이 아닌 거짓으로 남을 비방해 명예를 훼손했을 경우에는 7년 이하의 징역, 10년 이하의 자격정지 또는 5천만 원 이하의 벌금형으로 처벌받게 된다"면서 "그런데 진실한 사실을 적시하는 경우에 명예훼손죄로 처벌하는 것이 타당한 것인지에 대하여 법조계에서도 뜨거운 찬반 논쟁이 있다.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폐지를 주장하는 입장은 피해 사실을 밝히는 것은 공익에 부합하고 사실을 말하는 것을 처벌해서는 안된다는 입장이다"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반면 사실 적시 명예훼손죄를 유지하자는 입장은 사실 적시라도 무차별적인 사생활 폭로는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고 피해자는 사적인 폭로보다는 법치주의 원칙상 법적인 절차를 거쳐 권리 구제를 받아야 한다는 입장이다"라며 "만약 사실 적시 명예훼손죄가 없어지면 극단적으로는 누구나 다른 사람의 모든 사생활을 폭로해도 처벌할 수 없다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이 변호사는 "현행법을 유지하면서 허위사실의 경우에는 당연히 처벌해야 하지만 진실한 사실 적시의 경우에는 타인의 사생활을 침해하지 않고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경우에는 처벌을 면제하거나 감경해야 할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승재현 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표현의 자유의 핵심은 진실을 말할 수 있는 자유이고 이는 원칙적으로 공공의 이익에 부합한다”며 “표현의 자유를 중시하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서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진실을 말하는 것 자체는 죄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 한편으로 타당성이 있지만 진실한 사실이라도 당사자의 입장에서는 절대 밝히고 싶지 않은 사실이 있다"고 의견을 전했다.
이어 "명예와 위신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전통적 문화와 이를 뒷받침하고 있는 법률 속에서 내밀한 가족사, 개인의 병력과 성적 지향이 무차별적으로 드러나면 개인에게는 치명적이고 회복 불가능한 명예훼손이 일어난다"면서 "또한 우리가 경험했듯이 인터넷 악플은 개인의 삶을 파괴하고 생명을 빼앗아가는 결과를 초래했다. 표현의 자유는 존중해야 되지만 개인의 인격권 역시 보장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승 연구위원은 "사실적시 명예훼손의 경우 형사처벌이 아니라 민사상 손해배상으로 해결하면 된다는 의견도 있다"면서도 "그러나 명예는 돈으로 회복될 수 있는 법익이 아니다. 한번 침해되면 되돌이킬 수 없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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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나 한경닷컴 기자 help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