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내달 중 ‘2050 장기 저탄소 발전전략’을 확정해 발표한다. 지금보다 탄소 배출량을 70% 안팎 줄이는 매우 강력한 대책이 나올 것으로 알려졌다. 산업계는 이 같은 정부 움직임에 크게 우려하고 있다. 정유사들은 “사실상 죽으란 소리”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지금도 기름 수요 감소에 적자를 보고 있는데, 이 방안이 확정되면 사실상 ‘정유 사업 퇴출’을 뜻한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탄소 저감이란 큰 흐름에 동참하면서, 국가 기간 산업인 정유업을 보호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강력한 저탄소 대책 예고
정부 관계자는 22일 “예정대로 다음달에 2050 장기 저탄소 발전전략을 확정해 발표할 것”이라며 “매우 공격적인 목표가 설정될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장기 저탄소 발전전략(LEDS)은 파리협정에 따라 당사국들이 유엔기후변화협약에 연내 제출하기로 한 탄소 저감 대책이다.정부는 작년 3월 출범한 ‘2050 저탄소 사회 비전 포럼’으로부터 검토안을 올 2월 받고, 최종안을 조율 중이다. 다섯 가지 검토안 중 가장 강력한 1안이나 또는 이보다 한 단계 낮은 2안 채택이 유력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2050년까지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담은 검토안의 1안은 감축률 75%, 2안은 69%를 담고 있다. 2017년 국내 온실가스 배출량은 약 7억910만t. 이를 2억t 안팎까지 급격하게 낮추겠다는 것이다. 수송 부문에선 1안과 2안 모두 내연기관 자동차 비중을 7% 수준으로 떨어뜨리는 것이 핵심이다. 사실상 내연기관차 ‘퇴출’을 의미한다. 대신 전기차, 수소차 등 미래형 자동차 비중을 93%까지 높이는 것을 검토안은 제안했다. 중간 수준인 3안이 채택된다 해도 내연기관차 비중은 18%까지 떨어진다.
“규제로 얻는 효과보다 비용 크다”
정유사들은 “정부가 너무 눈높이를 높게 잡았다”고 주장한다. 현재 LEDS 방안을 제출한 국가는 총 19개국. 이 가운데 한국처럼 탄소중립 선언을 한 국가는 포르투갈 코스타리카 핀란드 등 8개국이다.
탄소중립은 온실가스 감축량이 배출량을 상쇄해 ‘제로(0)’가 된 상태를 뜻한다. 가장 강력한 규제 방안을 제시한 국가들로, 대부분이 내연기관차 완전 퇴출을 방안에 담고 있다. 하지만 이들 국가는 한국처럼 강력한 자동차·정유산업을 갖고 있지 않다. 경제 규모도 한국보다 작다. 미국 일본 프랑스 등 경제 규모가 크고 관련 산업이 발달한 국가는 아직까지 탄소중립 선언을 하고 있지 않다. 대한석유협회 관계자는 “굳이 한국이 나서 스스로 산업 경쟁력을 해치는 정책을 먼저 할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전기차 보급을 곧 온실가스 감축으로 여기는 정부 시각도 문제란 지적이다. 전기차의 연료인 전기를 생산할 때 기름 못지않은 탄소 배출이 이뤄진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한국의 석탄발전 비중은 작년 기준 40.8%다. 그 뒤를 천연가스(25.8%), 원자력(25%)이 차지했다. 재생에너지 비중은 6.7%에 불과했다.
전기차 보급을 공격적으로 추진 중인 유럽의 석탄발전 비중은 17.5%로, 재생에너지 비중(22.9%)보다 낮다. 민경덕 서울대 기계공학과 교수는 “비용 추계나 환경성 평가 없이 세계 최고 수준의 규제만 따르다가 오히려 온실가스 배출량을 늘릴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정유사, 논의 과정에서 배제
정유사들은 “정부가 방향을 정해놓고 일방적으로 정책을 결정했다”고 주장한다. 저탄소 사회 비전 포럼이 운영되는 9개월간 60여 차례의 긴 논의 과정이 있었지만 정유사가 직접 논의 과정에 들어갈 수는 없었다. 학계 등을 통해 간접적으로 목소리를 낼 뿐이었다. 환경부 관계자는 “남은 기간 정유사 의견을 최대한 청취할 것”이라고 말했다.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 에너지환경대학원장은 “국내 여건에 맞지 않는 수송 부문 온실가스 규제는 세계 최고 경쟁력을 갖춘 정유산업, 자동차산업을 위축시키고 중소 자동차 부품사 생존에도 막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온실가스의 급격한 감축으로 인한 일자리 감소와 비용 증가 등에 대한 국민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안재광 기자 ahnj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