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직무급을 도입하지 않는 공공기관은 경영평가 때 불이익을 주기로 했다. 직무급은 근속연수에 따라 자동으로 임금이 오르는 호봉제와 달리 직무의 중요도·난이도에 따라 임금을 달리 주는 제도다. 지지부진한 직무급 도입에 속도가 붙을 것으로 기대된다. '한국판 뉴딜' 사업에 적극 참여하는 기관에는 인센티브를 준다.
◆정부 "경영평가 고쳐 직무급 확산에 속도"
기획재정부는 지난달말 '2020년도 공공기관 경영평가 편람'을 수정했다고 17일 밝혔다. 주요 수정 사항은 직무급 도입에 대한 평가를 강화한 것이다. 기존 경영평가에선 '합리적인 보수 제도 구축' 부문이 100점 만점에 3점이고, ▲직무급 도입 노력 ▲예산편성지침 등 보수 규정 준수 ▲임금피크제 운영 성과 등 3개 항목을 합쳐 평가했다. 직무급 도입 노력을 안해도 나머지 2개 항목을 잘 수행하면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는 구조다. 이 정도로는 직무급 도입을 유도할 만한 유인이 안된다는 지적이 많았다.
수정안은 직무급 도입 노력 부문을 분리해 2점을 부여했다. 나머지 2개 항목은 1.5점으로 조정했다. 이전엔 호봉제를 고치려는 노력을 전혀 안해도 보수 규정 준수, 임금피크제 운영 성과가 탁월하면 3점 가까운 점수를 받을 수 있었지만, 앞으로 이런 기관은 잘해야 1.5점밖에 못 받는다. 직무급 도입에 손을 놓으면 확실히 불이익을 주는 구조가 된 것이다. 공공기관의 한 관계자는 "직무급 관련 평가 점수가 2점이라지만 단독 평가여서 크게 느껴진다"며 "확실히 평가의 구속력이 생겼다"고 말했다.
◆직무급 도입 기관 5곳 불과
공공기관 직무급 도입 및 확산은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이다. 우리나라는 아직까지 호봉제 운영 기업이 많아 능력에 따른 합리적인 보상이 이뤄지지 않고 생산성 향상의 발목을 잡는다는 문제의식에 따른 것이다. 직무급이 도입되면 연차가 낮은 직원도 직무 난이도가 높으면 임금을 많이 받을 수 있는 체계가 된다.박근혜 정부 때는 공공기관 성과연봉제 도입을 추진했었다. 직원의 업무능력과 성과를 등급별로 평가해 임금을 차등하는 제도다. 일반적으로 성과연봉제가 직무급제보다 능력 및 성과에 따른 임금을 차등하는 정도가 크다. 때문에 호봉제에서 성과연봉제로의 전환은 공공기관 노동자들에게 너무 급격한 변화로 받아들여졌고, 추진 과정 또한 노조 동의 없이 일방적으로 밀어붙인 탓에 반발이 컸다. '친노조 성향'의 문재인 정부가 성과연봉제를 폐기하는 대신 이보다 강도가 약한 직무급제를 추진키로 한 배경이다.
하지만 이마저도 지지부진하다. 336개 공공기관 중 직무급을 도입한 곳은 한국재정정보원, 새만금개발공사 등 5개에 불과하다. 정부가 공공기관에 큰 영향을 주는 경영평가를 고쳐 직무급 도입 압박을 키우기로 한 이유다. 경영평가 결과는 임직원 성과급 규모를 좌우하기 때문에 공공기관들은 좋은 점수를 받기 위해 목을 멘다. 바뀐 평가 기준은 내년 3월부터 시작될 2020년도 공공기관 경영평가에 적용된다.
◆뉴딜 적극 추진한 기관엔 경영평가 때 가점
문제는 노조의 반발이다. 민주노총 산하 공공운수노조는 최근 경영평가 편람 수정 소식이 알려지자 "정부가 노동자의 동의 없이 일방적으로 직무 성과 중심 임금체계 개편을 강행하고 있다"는 내용의 성명을 냈다. 12일부터 서울역·부산역 등에서 시위를 시작한 전국철도노동조합도 주요 투쟁 이유 중 하나로 직무급제 강행을 들었다. 이에 대해 기재부 관계자는 "노동계도 낡은 호봉제를 개선해야 한다는 문제 의식은 공유하고 있다"며 "경영평가가 너무 큰 압박이 되지 않도록 합리적으로 수정했다"고 설명했다. 임금 체계 개편 노력을 충분히 하면 당장 직무급 도입을 못해도 어느 정도 점수를 받을 수 있게 했다는 것이다.
수정안의 또다른 주요 내용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응을 잘 한 기관에 3점의 가점을 주는 제도를 신설한 점이다. 주요 평가 내용은 ▲임금 자진 반납 등 고통 분담 노력 ▲소상공인 금융지원 등 정부 정책 대응 노력 ▲한국판 뉴딜 추진 노력 및 성과 등이다. 뉴딜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는지를 보는 부문이 특히 눈에 띈다. 공공기관으로 하여금 뉴딜 사업을 적극 발굴하고 추진하도록 함으로써 뉴딜 확산에 힘을 싣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기재부는 경영평가 때 코로나19에 따른 피해도 감안해주기로 했다. 재무실적 등을 평가할 때 코로나19로 휴업을 한 기간과 중단된 사업 등은 제외하는 방식을 통해서다.
서민준 기자 morand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