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오후 서울 여의도 해운빌딩에서 열린 컨테이너선사 사장단 간담회. 최근 불거진 ‘해운대란’의 대응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주무부처인 해양수산부가 긴급 소집한 자리였다. 수출기업들은 선박 부족과 해상 운임 상승이라는 ‘이중고’로 절체절명의 위기에 몰려 있다.
참석자들의 눈과 귀는 문성혁 해수부 장관의 입에 쏠렸다. 문 장관은 모두발언에서 “해상 운임 상승과 선적 공간 부족은 미국 경기부양에 따른 상품 수요 증가가 직접적인 원인”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갑자기 2017년 2월 파산한 한진해운 사례를 꺼냈다. 문 장관은 “한진해운 파산 이후 국적선사의 선복 공급량이 감소한 것이 문제를 악화시켰다”고 지적했다. 이어 “기간산업의 중요성을 고려하지 않고, 금융 논리에 입각한 구조조정으로 해운산업에 큰 손실을 줬다”고 강조했다.
일리있는 얘기다. 한진해운은 2016년 찾아온 불황이 겹치면서 과잉투자에 따른 1조5000억원의 회사채를 막지 못해 이듬해 파산 처리됐다. 박근혜 정부는 특혜 시비를 우려해 과감한 지원을 꺼렸다. 산업은행 등 채권단도 책임 떠넘기기에 급급했다. 최근 해운대란을 맞아 ‘한진해운이 살아남았다면…’이라는 탄식이 해운업계에서 자주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다만 이는 가정일 뿐이다. 과거 구조조정의 잘못된 선례를 반면교사로 삼을 수는 있다. 하지만 이날 간담회는 코로나19 사태 이후 본격적으로 불거진 해운대란 대응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마련된 자리다. 해운대란 발생의 근본적 원인은 코로나19 영향으로 선박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한 것이다.
간담회에 참석한 한 해운사 대표는 “화물 수요가 크게 증가한 데다 글로벌 선사들이 중국 노선에 배를 우선 투입하면서 국내 기업들이 타격을 받았다”고 지적했다. 해운대란은 코로나19 사태가 불거진 지난 3월부터 꾸준히 제기된 현안이다. 이 상황에서 해운대란의 책임을 과거 정부에 떠넘기는 건 또 다른 얘기다. 정부가 집값 상승의 책임을 이전 정부에 돌리는 것과 마찬가지다.
문 장관은 늑장대응에 대한 비판을 의식한 듯 해운산업 재건을 위한 현 정부의 노력을 자세히 소개하는 데도 공을 들였다. ‘해운산업은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고 있다’ ‘정부는 일부 전문가와 금융계의 반대에도 해운산업을 재건시켰다’는 자화자찬을 늘어놨다.
정부의 노력을 무작정 폄하하는 건 아니다. 다만 지금은 과거 정부에 대한 비난이나 자화자찬에 앞서 정부 차원의 강력한 지원 대책이 나와야 할 시점이다. 정부가 이날 공개한 임시선박 투입계획도 그동안 발표한 대책과 별반 달라진 것이 없었다. “정부의 대책은 언제나 예상 가능하다”는 한 해운사 대표의 탄식이 귓가를 맴돈다.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