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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광엽의 논점과 관점] 그리운 '사상가' 이건희와 전태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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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강한 존재는 독재자도 핵무기도 아닌 ‘사상’이다. 프랑스혁명, 10월 혁명, 미국 독립혁명의 동력도 사회계약설·계급투쟁론·민주공화정이라는 새로운 사상과 이에 대한 시민의 동의였다. 케인스가 “세계를 지배하는 것은 사상 말고는 별로 없다”는 문장으로 명저 《고용, 이자 및 화폐에 관한 일반이론》을 끝맺음한 대로다.

스물두 해 불꽃 삶을 살다간 전태일 열사 50주기가 코앞(13일)이다. 취학 기간이 5년에 불과해 ‘무학’에 가까웠던 전태일은 이제 ‘사상가’로 재조명받는다. 노동과 인간에 대한 따스한 시선, ‘다른 세상’을 꿈꾼 남다른 비전 등에서 어떤 구도자보다 심오하고 철저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는 그의 외침은 50년간 우리 머릿속을 지배하며 민주주의를 추동해냈다.
'전태일 50주기'…귀족노조 세상
50주기의 경건함을 깨는 것은 노동해방, 인간해방의 ‘전태일 정신’을 계승했다는 거대 노조의 일탈과 폭주다. 전태일은 어린 ‘시다’들의 주린 배를 풀빵으로 채워주고, 야근을 대신하다가 해고까지 당했다. ‘전태일의 후예’를 자처하는 대기업 조직 노동자 중심의 귀족노조는 정반대다. 한계선상 중소기업이나 노동 약자를 위한 배려라고는 전무하다. 한줌만 양보하면 실마리가 풀리는데도 비정규·저임금 근로자의 희생을 강요하는 집단이기주의가 차고 넘친다. 최저임금을 다락같이 올려 약자들을 실업 벼랑으로 내몬 것이 움직일 수 없는 증좌다. 오죽하면 전태일이 애타게 찾던 ‘근로기준법을 아는 대학생 친구’의 삶을 선택한 장기표 선생이 “망국 10적(敵) 중 민노총이 제1호”라며 분개할까.

‘무산자 독재’ ‘토지 공유’ 같은 시대착오로 치닫는 ‘먹물’의 득세도 기막히다. ‘정당한 노동가치’ ‘인간적인 삶’이라는 열사의 화두는 생계형 운동가들에 의해 ‘노동특권’ ‘무(無)노동 유(有)임금’으로 타락하고 말았다.

‘사상가 전태일’의 부활에 맞춰 다른 한 사람의 사상가가 우리 곁을 떠났다. 뉴욕타임스는 이건희 삼성 회장을 ‘원대한 방향을 제시한 큰 사상가’로 기렸다. 후진국의 30대초입 청년이 아버지와 비서실의 반대에도 사재를 털어 반도체 승부에 뛰어든 것부터 예사롭지 않다. 두 세대 전인 1974년의 일이다. 이후 “마누라와 자식 빼고 전부 바꿔보자”던 프랑크푸르트 선언(1993년), 갤럭시 신화의 초석이 된 애니콜 화형식(1995년) 등 그의 한 걸음 한 걸음은 큰 울림이었다. “출근부 찍지 마라”는 20여 년 전 어록은 코로나 시대에 더욱 빛난다.
이건희가 보여준 '노동해방'해법
탁월한 사상가의 조련 아래 삼성은 ‘세계 5위 브랜드’가 됐다. 앞에 애플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구글뿐이다. 벤츠·도요타, 인텔·소니, 페이스북·디즈니, 코카콜라·맥도날드 모두 삼성 뒤다. 삼성서 배운 ‘이건희 후예’들은 네이버 카카오 등 미래 산업을 일궜다.

이건희는 전태일이 생명으로 갈구했던 ‘노동존중·인간존중 시대’의 가능성도 열어젖혔다. 삼성전자가 최근 포브스에서 발표한 ‘세계 최고(best) 고용주’ 순위에서 1위에 오른 것이다. 친구·가족의 추천 여부, 동종업계 평판, 직원 자부심, 사회적 책임 이행 등을 종합평가한 결과다. 가차 없이 자르고 노조도 막는데 무슨 소리냐고? ‘온정적 가족기업이냐, 인재 중시 글로벌 기업이냐’는 기업의 선택일 뿐 선악 판단의 대상이 아니다. ‘무노조 경영’ 역시 인텔 델타항공 등 해외 유수기업에서도 흔한 ‘비(非)노조 고용계약’ 형태일 뿐이다. 당연히 노동법상 단결권 침해나 불법이 아니며, 노동 경시는 더욱 아니다. ‘권-노(權-勞) 유착’을 강화해가는 자칭 ‘전태일 후예’들이야말로 ‘전태일 정신’에 기생하는 노동해방의 적이다.

kecorep@hankyung. 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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