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뭐라고 만나는 사람마다 난리다. 아파트 청약 말이다. 과천에서는 3개 단지에 특별공급 9만명, 1순위 48만명 등 57만명이 몰렸다. 하남 감일지구에는 14만명, 1가구를 모집하는 세종시 무순위 청약에는 25만명이 신청했다. 구미 아이파크 더샵(약 2만명), 세종 한림풀에버(약 2만5000명)에도 수만명이 청약을 했다. 중복 신청자도 있겠지만, 지난 일주일동안 아파트를 잡겠다고 청약에 동원된 인원만 100만명이 넘는다.
'광풍(狂風)'이라는 단어가 딱 맞다. 청약의 이유는 다양하다. 집값이 오르면서 새 아파트는 '로또'급으로 차익이 가능해졌다. 무주택자라도 아껴왔던 자격이나 통장을 이왕이면 차익실현이 많은 곳에 쓰고 싶은 건 당연하다. 정부가 집값 안정을 위해 민간택지 분양가상한제를 부활시키면서 분양가와 시세의 차이가 더욱 벌어졌다.
여기에 바람을 더 불어넣은 건 '전셋값 급등'이다. 이유가 임대차법 때문이건 저금리 때문인 건 중요하지 않다. 전세매물이 부족해지면서 전셋값이 치솟은 건 명백한 팩트다. 공교롭게 이러한 타이밍에 아파트 분양이 나오다보니 장롱 속 통장들이 속속 고개를 들었다. 9월 말 기준 청약통장(주택청약종합저축·청약저축·청약부금·청약예금 포함) 가입자 수는 2681만2857명으로 대한민국 인구수(약 5178만명)의 절반 이상을 차지할 정도다.
집값에 전셋값 상승까지…로또된 청약에 '묻지마 신청'
주택형별로 수천대 1의 경쟁률까지 치솟았던 과천 지식정보타운 3개 단지(과천 푸르지오 오르투스, 과천 푸르지오 어울림 라비엔오, 과천 르센토 데시앙)에는 더욱 할 말이 많다. 1순위만 놓고보면 1586가구 모집에 56만9438이 신청했다. 평균 경쟁률이 359대 1에 달한다. 45만명이 신청하면서 역대 최고였던 2006년 판교신도시 기록을 깼다.과천 지정타는 그동안 분양가 문제로 갈등을 빚었고, 분양일정은 계속 미뤄졌다. 당해지역에서 거주요건을 2년으로 늘어났고, 동시청약을 받을 것으로 알려지면서 허들이 높아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이 벽은 청약직전에 무너졌다. 3개 단지에 동시청약이 가능해졌고, 가점을 따지지 않고 추첨으로 뽑는 신혼부부와 생애 최초 특별공급의 소득요건이 완화됐다. 가점이 있는 무주택자들은 모두 청약전쟁에 참전했고, 추첨으로 뽑는 특별공급과 중대형 주택형에도 '묻지마 신청'이 잇달았다.
과천 지정타 아파트들은 전용면적 84㎡ 기준으로 분양가가 8억원대인데, 주변 시세가 19억원까지 올랐다. 과천 새 아파트 전셋값은 10억원에 달할 정도다. 전셋값 보다 낮은 가격에 새 아파트를 받을 수 있는데, 안하는 사람이 바보가 될 정도였다. 서울 아파트값 중위값이 9억원을 웃도는 와중에 8억원 아파트는 평균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 됐다.
이러한 분위기가 작년에는 어땠을까? 지난해 5월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은 기자회견을 열고 "과천 지식정보타운 개발 과정에서 한국토지주택공사(LH)와 민간 건설사들이 토지 매각과 분양가 부풀리기로 막대한 이득을 챙겼다"고 주장했다.
경실련은 또 과천 지식정보타운 분양가에도 거품이 끼었다고 봤다. 경실련은 "국정감사 자료를 토대로 산정한 적정 분양가는 3.3㎡당 979만원이고, 건설사와 LH가 계약한 공사비를 토대로 산정해도 1132만원이면 충분하다"면서 "알려진 바에 따르면 평당 2000만원이 넘는 고분양가가 예상된다"고 지적했다.
작년만 해도 '고분양가' 지적했던 정부…청약문턱 낮추는데 앞장
경실련의 문제제기는 정부의 호응도 받았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도 "비싸다"고 언급하면서 분양이 중단됐다. 건설사들은 (경실련이) 면밀한 확인도 거치지 않고 과도한 특혜로 주장하고 있다고 반박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이후 선분양을 추진할 것인지, 후분양 혹은 임대 후 분양 등으로 전환할 것인지 등을 두고 흘러가다 분양시기는 올해 10월이 된 것이다.1년 반 가까이 분양이 미뤄지면서 분양을 준비했던 측도 기다리던 측도 지쳤다. 점수가 쌓이고 확률이 높아질 것으로 기대했지만, 청약의 뚜껑을 얼여보니 '택도 없다'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자격은 완화됐고, 집값이다 전셋값이다 그동안 청약할 이유가 쌓였다. 과천은 당연하고 서울권까지 청약자수는 역대급이었다.
2008년 준공된 원문동 래미안슈르 시세로 비교를 해봤다. 전용 84㎡의 지난해 5월 매매가는 10억3500만~11억1500만원었다. 지난 달에는 같은 면적이 14억~14억1000만원에 거래됐다. 나와있는 매물의 호가는 16억원에 달한다. 시세가 오르면서, 분양이 미뤄지는 동안 소수가 가져가는 로또의 크기만 커져버린 셈이 됐다.
청약전문가인 A씨는 최근 강의할 맛이 안난다고 했다. 자신의 형편과 상황에 맞도록 청약을 하고, 낮은 가점에도 공략할 수 있는 주택형을 뽑아주던 그였다. 이제는 너도나도 묻지마 청약을 하는 시절이 됐으니, 어떠한 조언도 필요없게 됐다는 푸념이었다.
문제는 자격조건이 완화되면서 '희망고문'만 늘고 있다는 점이다. 정부가 규제를 늘리면서 가점으로 대부분 당첨자를 뽑게 됐고, 이로인해 가점이 낮은 3040세대들의 박탈감이 커졌다. 이를 만회하기 위해 정부는 특별공급의 문턱을 낮췄다. 낮아진 문턱에 너도나도 청약하면서 경쟁률은 한 없이 높아지고 있다. 늘어난 특별공급만큼 1순위를 줄어들어 무주택을 유지하면서 버텨온 4050세대들도 불만이 터지고 있다.
정부는 또 한번 특별공급의 허들을 낮춘다. 신혼부부와 생애최초 특별공급에 대한 소득요건을 완화한다. 특별공급에서 수백대 1의 경쟁률이 예삿일이 되고 1순위를 추월하게 될 지도 모르겠다. 3040세대들이 내 집 마련의 기회를 달라는 게 이런 것이었는지 곱씹어볼 시기다. 오는 10일부터 과천 3개 단지의 당첨자가 발표가 12일까지 이어진다. 평균이 70점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4인가족 30~40대가 얻기엔 어려운 점수다. 희망고문도 고문이다. 괴롭다.
김하나 한경닷컴 기자 han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