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월세 상한제와 계약갱신청구권 도입 후폭풍이 임대차시장을 휩쓸고 있습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마저 세입자의 계약갱신청구권 행사로 주택 매각이 힘들어지자 이사비를 지급하기로 했죠. 집코노미에선 제도 도입 직후 이런 풍토가 일반화될 우려가 높다고 지적한 바 있습니다.
‘주택임대차보호법’에서 집주인이 세입자의 계약갱신청구를 거절할 수 있는 사유는 9가지입니다. 본인이나 직계존·비속의 거주가 일반적인 사유죠. 그런데 여기엔 ‘서로 합의해 임대인이 임차인에게 상당한 보상을 지급한 경우’도 있습니다. 홍 부총리가 세입자에게 지급한 이사비가 바로 이런 합의금입니다. 계약갱신청구를 물리기 위해서죠.
그런데 일반적으로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이처럼 합의금을 주고받을 때도 세금과 원천징수 의무가 발생한다는 걸 아시나요? 매매계약을 해지하면서 위약금을 주고받을 때도 마찬가지인데요. 받는 사람 입장에선 합의금이냐 위약금이 기타소득이 되기 때문에 건네는 사람 입장에서도 해당 금액에 대한 원천징수 의무가 생기는 것이죠.
원천징수는 22%입니다. 만약 이사비로 1000만원을 줘야한다면 실제로는 780만원을 지급한 뒤 나머지인 220만원은 세무서와 구청에 신고하고 납부해야 하는 것이죠. 받는 사람은 원천징수영수증 발급을 요구해야 하고요. 그래야 5월에 종합소득세를 신고할 때 원천징수세액만큼을 공제받기 때문입니다.
이게 ‘국세기본법’입니다. 국세를 다루는 기재부의 주무장관인 홍 부총리께선 당연히 원천징수 의무를 모르지 않으셨을 겁니다. 확인되지 않은 의혹을 제기하려 이 글을 쓰는 것은 아닙니다. 앞으로 임대차시장에서 일반화될 가능성이 높은 합의금 지급과 관련해 세금 사고가 터질 수 있다는 것을 지적하기 위해서입니다.
세입자를 내보내기 위한 합의금은 상가임대차시장에 먼저 도입된 권리금과 비슷한 개념입니다. 권리금은 세입자끼리 주고받는 것이지만 사실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집주인이 세입자를 내보내기 위해 지급한 합의금은 결국 다음 임차인의 보증금 증액을 통해 보전하기 때문이죠.
홍 부총리는 이미 매각하기로 한 경기 의왕 아파트의 계약을 속개하기 위해 이사비를 지급했지만 대부분의 집주인들은 보증금을 증액하기 위해 합의금을 활용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최대 4년 동안 임대료 상승폭이 5%로 제한되는 전월세 상한제는 새로운 임차인과의 계약엔 적용되지 않기 때문이죠.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임대차시장으로 가고 있습니다. 세입자도 집주인도 기타소득과 원천징수 신고를 잊지 않으시기 바랍니다.
전형진 기자 withmol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