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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현실 칼럼] '기업'과 '기업인'은 다르다는 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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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인들이 설령 나라 경제보다 자기 기업을 먼저 생각하더라도 결국 국가 경제를 위해 헌신하는 것이다. 기업인들이 진짜 애국자다.”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 얘기가 아니다. 2017년 주요 기업인들과의 호프미팅에서 나온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이다. 이 말은 진심이었을까?

상법·공정거래법 개정안에 찬성하는 사람들의 주장은 ‘기업’과 ‘기업인’은 다르다는 것이다. 개인과 보이지 않는 법인의 차이를 말하는 게 아니다. 이 사람들은 “기업과 기업인이 동일하다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구속돼 있는 동안 삼성전자가 휘청거렸어야 맞는 것 아니냐”고 말한다. 삼성전자가 잘나가는 게 기업인과 상관없다는 시그널이란 것이다. 오너가 아니라 대주주 경영자일 뿐이란 주장도 더해진다. 소위 공정경제 3법은 기업인이 아니라 기업을 위한 법이라는 주장은 소유경영에 대한 적개심을 보여준다. 이 논리라면 법안을 우려하는 기업인들은 기업을 위하지 않는 사람들이란 얘기가 된다.

반대로 기업 실적이 추락하거나 사업이 실패할 때도 이들이 기업과 기업인은 다르다고 할지 의문이다. 기업인의 잘못이라며 배임죄를 물어야 한다거나 오너가 사재를 털어 책임져야 한다던 바로 그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기업이 잘나갈 땐 기업인과 상관없다고 깎아내리고, 기업이 잘못되면 기업인을 때리는, ‘반(反)기업인 법’이 곧 ‘친(親)기업 법’이라고 우기는 정치는 세상에 없다.

이들이 말하는 공정도 균형감을 상실하고 있다. ‘소수 주주 보호’ 는 그럴듯하게 들린다. 기본적으로 자기 몫에 비례하는 권리 행사를 넘어 다수의 소수 주주를 끌어모아 소수의 다수 주주를 무력화시키는 게 공정인지 의문이다.

상법·공정거래법 개정안 찬성론자들은 국내기업의 경영 수준이 형편없다고 말한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 기업 수준밖에 안 되고 지배구조도 후진적이기 짝이 없다는 식이다. 그 말이 맞다면 국내에서 글로벌 1등 기업이 어떻게 속속 나오고 있는지 묻고 싶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한국에서 온 재·정계 인사를 만나면 삼성전자 같은 기업이 어떻게 나왔는지 묻는다고 한다. “미국도 싫고 중국도 싫다”며 한국 삼성전자와 일하고 싶다는 말도 했다는 후문이다. 다른 경영, 다른 지배구조로 국내에서 글로벌 1등 기업이 탄생하고 있으면, 먼저 연구부터 해보는 게 순서일 것이다.

자국 기업을 비하하는 지독한 사대주의는 이뿐만이 아니다. 기업인들이 우려하고 있는, 외국에도 없는 감사위원 분리 선출이 그렇다. 찬성하는 쪽에선 제도를 도입해 보고 일정 기간 지나 자율을 확대하면 되지 않느냐는 주장도 한다. 글로벌 기업과 경쟁하는 국내기업이 왜 실험대상이 돼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원칙대로 경영하면 헤지펀드 공격을 받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한 번도 기업 경영을 해보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나라 정치의 재벌개혁 타령도 그렇다. 그토록 우려먹었으면 멈출 때도 됐건만 끝이 없다. 전 세계에 있는 규제란 규제는 다 끌고와 재벌개혁으로 포장을 한다.

미국 경쟁당국은 여차하면 기업을 쪼갠다는 주장도 이들의 단골메뉴다. 과거 미국 정부가 AT&T를 조각냈지만 통신산업은 망가지고 유럽의 노키아·에릭슨, 중국의 화웨이만 키워준 꼴이 되고 말았다. 미국 법무부가 구글 등 빅테크 기업 분리에 나설 것이란 얘기가 나오지만, 어느 나라보다 국익을 따지는 게 미국이다. 무엇이 국익인지 잘 모르는 경쟁당국 순위로 치면 한국이 상위에 오를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경제학자 프랭크 나이트는 세 가지 불확실성을 말했다. 통계적으로 측정이 가능한 리스크, 통계적으로 측정하기 어려운 모호성, 그리고 예측이 불가능한 진짜 불확실성이다. 우리가 직면한 상황이 진짜 불확실성에 가깝다면 믿을 건 기업가 정신밖에 없다. 시대정신은 공정경제 3법 통과가 아니라 정치인이 기업인에게 겸허하게 길을 묻는 것이다.

ah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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