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인터넷에서 한국인 동포 학생의 하버드대 졸업식 연설문을 우연히 접하게 됐다. 그는 요리사인 아버지와 미용실에서 일하는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113만 명의 미등록 미국 이민자 자녀 중 한 명이었다. 부모님의 눈물겨운 이민사가 성공 스토리가 될 수 있도록 열심히 공부해준 대견스러운 모습도 좋았지만, 연설문 내용은 더 큰 여운으로 남았다. 요약하면 ‘우리의 재능은 나의 것인 듯싶지만 그렇지 않다. 재능은 공동의 자산이다. 누구도 혼자서는 지금의 위치에 오지 못한다. 따라서 개인의 재능은 사회적 협동의 산물이고, 이에 공동체에 기여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지식인의 사회적 책임감을 지혜롭게 전달한 명연설이었다.
우리 국민은 전후 세계 최하 빈민국에서 몇십 년 만에 세계 10대 경제 강국이란 전무후무한 역사를 이뤄낸 민족이다. 그 배경에는 밥은 굶어도 자식 공부는 시킨다는 우리 부모님들의 헌신으로 키워낸 수많은 지식인이 있었다. 심지어 민주화 과정에서도 수많은 대학생과 지식인들이 그 중심에 섰고, 대한민국을 자유민주주의와 경제 강국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 위대한 나라로 만든 배경에도 지식인들의 기여가 컸다.
그런데 문득 ‘지금 우리 사회의 모습은 어떤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반 국민을 희생양으로 삼은 사모펀드 사기 사건은 금융 지식을 온갖 추잡하고 잡스러운 테크닉으로 변질시킨 종합선물세트였다. 그 과정에 관리 감독 및 감시 기능을 할 수 있는 수많은 기관과 그곳에 종사하는 전문 지식인들이 존재했음에도 “우리도 속았다”는 아우성 외에 누구 하나 자성의 목소리를 내며 반성하는 이가 없다.
최근 월성 1호기 감사원 보고서 결과를 접하면서 마음은 더 무거워진다. 에너지 정책은 과학기술적 지식을 기반으로 한다. 보고서를 읽어 보니 나라의 명운이 걸린 일인데 소위 지식인들이 이 정부에서는 맞고 저 정부에서는 틀리다라는 궤변으로 국민을 기만하고 있었다. 더 나아가 불법적으로 자료를 삭제하고 파기하는 일들이 벌어졌다는 뉴스를 접했을 때는 ‘우리 지식인들의 사회적 책무와 양심은 대체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하는 자괴감이 들었다.
남보다 더 많은 배움과 성찰을 가진 사람을 우리는 지식인이라고 한다. 그리고 앞서 언급한 학생의 말처럼 사회적 협동으로 일궈낸 지식인들은 지식이라는 숭고한 무기를 사회를 위해 봉사하는 데 사용할 의무가 있다. 프랑스의 사상가 장 폴 사르트르가 “지식인은 자기 일이 아닌, 남의 일에 뛰어드는 자”라고 말하기도 했듯이 말이다.
지식인이 국민을 속이고 지식을 개인의 보신(保身)에 이용한다거나 지식을 무기 삼아 국민을 착취하고 국익을 훼손하는 짓을 한다면 당장 눈앞에 드러나지는 않을지언정 보이지 않는 칼로 국민들의 보이지 않는 피를 철철 흘리게 하는 악행이다. 다시 수많은 밤을 새웠던 그날의 순수한 열정으로, 대한민국 지식인들의 양심적 행동과 국가 견인의 선봉자로서의 모습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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