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가 총리가 정권 출범 직후란 점, 인도네시아·베트남 순방 등의 대외행사가 겹쳤던 까닭에 언론 접촉이 잦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란 점을 물론 고려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국가 최고지도자가 언론에 ‘민낯’을 드러낼 수밖에 없는 문화는 오래전부터 일본 사회에 깊이 뿌리내렸다. 언론을 국민의 대변자로 보기에 언론을 통해 주요 정책을 설명하고 국민의 이해를 구하는 게 당연시되는 것이다.
선진국의 자연스런 언론 접촉
공식 기자회견 외에도 총리는 통상 출퇴근길에 선 채로 10여 분 동안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응답한다. 사전에 조율되지 않은 질문에 총리가 답변하는 것을 보면 국정을 얼마나 상세하게 파악하고 있는지 ‘내공’이 고스란히 드러날 수밖에 없다. 이는 퉁명스러운 말투와 고압적인 태도 탓에 언론 비(非)친화적이라는 평을 듣는 스가 총리도 피해갈 수 없는 ‘족쇄’다.일본뿐 아니라 주요 선진국에선 국가 최고지도자의 언론과 접촉이 너무나 자연스럽다. 국가 지도자가 언론 접촉을 선호하는지 않는지, 언론이 정권에 우호적인지는 중요한 게 아니다. 자신에게 비판적인 언론에 대놓고 ‘가짜뉴스’ 딱지를 붙였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거의 매일 백악관 기자실에 들러 1시간 넘게 주요 현안을 브리핑했던 기억이 선명하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올 들어 20번 넘게 기자회견을 했다.
대조적으로 한국에선 주요 현안에 대해 대통령의 육성을 접하는 게 매우 드문 일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올 들어 1월 신년 기자회견과 5월 취임 3주년 기자회견의 단 두 차례만 언론과 공식 접촉했다.
'박제된 발언'은 소통 걸림돌
대신 매주 수석·보좌관회의와 격주로 열리는 국무회의에서의 ‘박제화된’ 발언만 국민에게 전해질 뿐이다. 국민에게 직접 전해야 할 법한 내용을 왜 보좌관을 거쳐 전달하는지 고개를 갸우뚱하는 경우도 많다. 북한군에게 피살된 공무원 아들의 손편지에 8일 만에야 답장을 전달하는 등 일반적인 국민 정서와 거리가 먼 대응도 적지 않다. ‘대통령께서 직접 작성하신다’던 SNS 메시지는 ‘의사와 간호사를 편 가르기 한다’는 비판이 제기되자 “보좌진이 작성한 것”이라며 말을 바꿨다.국민은 대통령으로부터 직접 해명과 전망을 듣고 싶은 일이 너무나 많다. 급등한 부동산 가격과 최악의 전·월세 대란, 코로나 방역을 빌미로 한 과도한 기본권 침해, 추진 근거가 사라진 탈원전 정책, 파장이 확대되는 라임·옵티머스 스캔들, 존재감 없는 외교, 법무부와 검찰의 대립 등의 주요 문제를 책임질 지도자의 입장을 알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대통령의 생각이 무엇인지 가늠할 방법이 없다.
‘소통’을 강조하며 집권했고, “주요 사안은 대통령이 직접 언론에 브리핑하겠다”(대통령 취임연설)고 약속한 게 바로 문 대통령 아닌가. ‘노무현 정신’을 계승하겠다던 문 대통령은 재임 중 150번 이상 언론 앞에 섰던 노 전 대통령의 발자취부터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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