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에서 택배기사로 일하던 남성이 또 숨졌다.
지난 20일 오전 3시께 로젠택배 부산 강서지점과 계약을 맺고 개인사업자 택배기사로 일하던 40대 김모씨가 극단적 선택을 했다. 김씨는 유서에 "억울하다. 수수료에 세금 등 이것저것 빼고 나면 한 달에 200만원도 못 번다"는 호소를 남긴 채 이날 아침 로젠택배 강서지점 터미널에서 발견됐다.
김씨의 사망으로 올해 유명을 달리한 택배기사는 11명에 달한다.
최근 택배기사들이 10명이 잇따라 사망하면서 택배 근로 현장의 열악한 환경과 처우가 사회적 문제로 떠오른 가운데 갑질과 생활고로 극단적 선택을 하는 경우까지 나오면서 산업의 근본적 변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책임 다하려고 했다면 극단 선택 없었을 것"
전국택배노동조합에 따르면 김씨는 20일 오전 6시께 로젠택배 부산 강서지점 터미널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새벽 3시경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추정되는 김씨는 오전 2시30분께 자필로 작성한 A4용지 3장 분량의 유서를 작성한 뒤 이를 노조 조합원에게 전송했다. 그는 유서에서 직장 내 갑질과 열악한 근무 환경, 적은 수입으로 인한 생활고 등을 토로했다.
그는 유서에서 "우리(택배기사)는 이 일을 하기 위해 국가시험에, 차량구입에, 전용번호판까지 준비해야 한다"며 "그러나 현실은 200만원도 못 버는 일을 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대리점에서 당한 갑질도 털어놓았다. 그는 "저 같은 경우 적은 수수료에 세금 등을 빼면 한 달 200만원도 벌지 못하는 구역"이라며 "이런 구역은 소장(기사)을 모집하면 안 되는데도 (대리점은) 직원을 줄이기 위해 소장을 모집해 보증금을 받고 권리금을 팔았다"고 했다.
김씨는 "한여름 더위에 하차 작업은 사람을 과로사하게 만드는 것을 알면서도 중고로 150만원이면 사는 이동식 에어컨조차 사주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또 "대리점은 화나는 일이 생겼다고 하차 작업을 끊고 소장을 불러서 의자에 앉으라 하고는 자신이 먹던 종이 커피잔을 쓰레기통에 던지며 화를 냈다"며 "소장을 소장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직원 이하로 보고 있음을 알았다"고 말했다.
노조에 따르면 김씨는 적은 수입에 은행권 신용도까지 떨어지자 다른 일을 구하기 위해 퇴사를 희망했으나 이마저도 막았다. 실제로 김씨는 사망 직전까지 본인 차량에 '구인 광고'를 달고 근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김씨는 "(은행에서 빌린 돈에 대한) 원금과 이자로 한 달 120만원의 추가 지출이 생기고 있어 빨리 그만두고 직장을 알아봐야 했다"며 "자기들이 책임을 다하려고 했다면 이런 극단적인 선택은 없었을 것"이라는 글을 남겼다.
대리점 갑질 의혹 전면 부인…근무 환경 개선 목소리
로젠택배 부산 강서지점은 갑질 의혹을 전면 부인하고 있다. 지점 관계자는 "김씨에게 손해배상을 요구한 사실이 없다"며 "김씨는 오는 11월 계약이 종료될 예정이었고 퇴사 시 후임자를 데려와야 하는 조건은 계약서에 명시된 것"이라고 반박했다. 이어 "대리점 갑질 때문에 극단적 선택을 했다는 주장은 억측"이라고 선을 그었다.로젠택배 본사는 "사실관계를 파악 중"이라고만 했다.
로젠택배와 대리점의 발표에도 최근 택배기사들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잇따르면서 근무환경 개선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올해 목숨을 잃은 택배기사 중 김씨를 제외한 10명은 과로사로 추정된다. 문재인 대통령도 최근 택배기사 과로사 문제를 직접 거론하며 대책 마련을 강구해달라고 주문한 바 있다.
김수현 한경닷컴 기자 ksoohy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