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 광덕산은 호두나무 시배지로 불린다. 고려 충렬왕 16년(1290년)에 류청신이 원나라에 갔다가 어가를 모시고 돌아올 때 호두나무 묘목과 열매를 가져와 이곳에 심었기 때문이다. 묘목은 광덕산 자락의 광덕사 경내에 심고 열매는 류청신의 고향집 매당리 뜰 앞에 심었다고 한다. 천안이 호두과자의 대명사가 된 것도 광덕산 호두나무와 관련이 있다.
광덕사에서 차로 3분거리에 화이트블럭(대표 이수문, 71)의 천안창작촌이 자리잡고 있다. 천안에서 공주 마곡사로 넘어가는 도로의 중간이다. 이곳은 평소엔 한가한 곳이다. 수려한 광덕산이나 천년고찰 광덕사를 찾는 사람 이외엔 별로 다니질 않는 길이다.
이곳에서 최근 ‘2020 광덕아트위크’(관람객 체험행사는 10월 9일과 10일, 전시회는 10월 9~21일)가 개막됐다. 이곳에 입주한 작가와 인근 천안 아산 공주 등 충남지역에서 활동하는 예술인 등 50여명이 작품을 선보였다. 추상화 구상화 민화 등 회화작품뿐 아니라 유리공예 목공예 등의 작품이 전시됐다. 야외공간에선 벼룩시장도 열렸다. 예술가들의 작업공간도 개방됐다. 차로 5분거리에 있는 광덕양조장에서도 작품전시회가 열렸다. 맞은편 들녘에선 벼들이 누런 물결을 이루고 있었고 은행 역시 눈부신 황금빛으로 변해가던 때였다.
개막 첫날 1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천안창작촌을 찾았다. 이곳은 이수문 화이트블럭 대표(레인지후드업체 하츠 창업자)가 사재를 털어 만든 예술인 입주작업공간(레지던시)이다. 작업장 및 숙소를 무료로 2년간 제공한다. 전기료만 받는다. 2018년 문을 열었다. 뒤쪽의 울창한 산림을 포함해 화이트블럭이 소유한 이 지역 전체 부지는 약 9만㎡에 이른다. 이중 7590㎡ 규모 부지에 건물 4개 동이 들어서 있고 16명의 작가가 입주해 활동하고 있다.
이것으로 끝나는게 아니다. 2단계와 3단계 프로젝트가 이어질 예정이다. 2단계 프로젝트는 대지 1320㎡ 규모에 전시관과 공연장 아트숍 서점 카페테리아 등이 들어설 예정이다. 내년 착공해 2022년 완공될 예정이다. 이 프로젝트의 핵심은 미술관을 정장을 입고 근엄하게 관람하는 곳이 아닌, 일반인들이 편하게 쉬다 갈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드는 것이다. 이 대표는 “관람객이 누워서 작품을 감상해도 되는 미술관을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3단계에선 인공지능(AI) 가상현실(VR) 증강현실(AR) 로봇 등 4차 산업혁명과 관련된 기술과 예술이 만나는 신개념아트를 구현하는 공간으로 구성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이 분야에 정통한 대학교수 등 전문가들과 협의하고 있다. 개념정립이 중요하고 이를 구체화할 방안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백남준씨가 비디오아트를 개척하고, 리히텐슈타인 등이 팝아트를 예술의 장르로 올려놨듯 천안창작촌이 4차산업혁명 관련기술과 예술이 결합하는 시작점이 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이런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것은 예술가로서의 끼와 관련이 있다. 그는 학창 시절(경기고·서울대 건축공학과) 밴드부와 연극반에서 활동했다. 군생활도 군악대(클라리넷)에서 했다. 경기고 밴드부 출신 모임인 ‘경기시니어앙상블’ 회장과 경기고 연극반 출신 모임인 ‘화동연우회’에서 주요 작품의 제작을 담당했다.
보루네오가구 한샘 현대종합목재에서 직장생활을 한뒤 레인지후드업체 하츠를 창업한 뒤에는 국민 뮤지컬로 불리는 명성황후의 산파역을 맡았다. 창작뮤지컬에 도전하기 위해 작가와 연출가를 섭외한뒤 1990년대 초반 런던과 뉴욕을 돌며 당시 공연중인 다수의 뮤지컬을 보고 배웠다. 뮤지컬의 황제 캐머런 매킨토시와 일본 연극계 대부 아사리 게이타 씨를 만나 조언도 들었다. 밴드 연극 뮤지컬에 이어 신개념 아트에 도전하는 그는 “천안창작촌이 국내 예술애호가들은 물론 해외관광객들까지 모여드는 신개념의 예술의 메카가 될 수 있도록 씨앗을 뿌리겠다”고 말했다.
김낙훈 한경글로벌강소기업연구원장 nhk@hankyung.com
<화이트블럭 천안창작촌 개요>설립; 2018년
위치; 천안시 광덕면
주요 시설; 4동의 레지던시 및 전시공간
입주작가; 16명
전체 부지 면적; 9만㎡(임야 포함)
이정선 기자 leewa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