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이 하이마트 매각 과정에서 차입매수(LBO) 방식을 쓴 선종구 전 하이마트 회장에게 적용된 배임죄를 유죄 취지로 판단하고 사건을 파기환송했다. 앞선 1·2심이 제 3의 회사를 설립해 피인수 대상회사(하이마트)와 합병시키는 '합병형 LBO'라고 판단하고 해당 LBO를 무죄로 본 것과 정반대의 결론이다.
대법원 1부 (주심 김선수 대법관)는 15일 특정 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위반(횡령) 등의 혐의를 받는 선종구 전 회장에 대한 상고심 선고기일에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
선종구 전 회장은 2005년 1차 하이마트 인수합병(M&A) 과정에서 홍콩계 사모펀드인 '어피너티'에 회사를 매각하면서 매수자측이 인수자금을 대출하는 데 하이마트 회사자산을 담보로 제공(LBO)해 2400여억원의 손해를 끼친 혐의를 받는다.
인수자가 피인수 회사의 자산을 담보로 돈을 빌린 뒤 인수하면 배임죄가 성립된다. 하지만 인수자가 제 3의 회사를 세워 돈을 빌린 뒤 피인수 기업과 합병시키면 배임죄가 적용되지 않는다. 합병 단계에서 피인수 회사 주주들이 제 3의 회사와 합칠지 말지 의사결정에 관여할 수 있는 등 피해를 회피할 기회가 있다는 이유에서다.
선 전 회장은 그 중간방법을 활용했다. 어피너티는 특수목적회사(SPC)인 '하이마트홀딩스'를 설립해 SPC와 하이마트를 합병시켰다. 그때 하이마트도 기존 부채를 갚는다는 이유로 함께 돈을 빌리게 했다.
대법원은 이 지점을 지적했다. 대법원은 "하이마트 소유의 부동산에 설정된 근저당권의 피담보채무에는 하이마트의 대출금 채무뿐 아니라 하이마트홀딩스의 대출금 채무도 포함됐다"며 "선 전 회장이 하이마트로 하여금 이 근저당권을 설정하게 한 행위는 대표이사로서의 임무를 위배해 인수자에 재산상 이익을 취득하게 하고, 하이마트에 재산상 손해를 가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하이마트가 갖고 있는 부동산이 인수자금을 마련하기 위한 자산으로 쓰였으므로 나중에 이를 변제하지 못할 경우 위험을 부담하게 했다는 것이다.
이어 "하이마트홀딩스는 특수목적법인에 불과해 피인수회사인 하이마트는 이 사건 합병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인 가치 있는 재산을 얻은 것으로 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다만 대법원은 이번 판결에서 선 전 회장의 LBO 형태가 합병형 LBO인지 담보제공형 LBO인지에 대해서는 명확히 밝히지 않았다. 대법원은 LBO 자체보다 거래 형태, 즉 하이마트홀딩스가 대출금을 갚지 못하면 하이마트가 입게 될 위험이 있으므로 배임이 인정되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선 전 회장의 LBO에 배임죄가 적용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던 1·2심 재판부는 “선 전 회장이 당시 대표이사로 영향력이 있었다는 점만으로 죄를 입증할 수 없다”며 “소액주주들은 자율적 선택을 했다”고 판단한 바 있다.
남정민/김리안 기자 peux@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