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3일 요트 구입을 위해 미국 여행을 떠난 강경화 외교부 장관 남편 이일병 연세대 명예교수가 올 초부터 베트남, 유럽 등 여러 차례 해외여행을 계획했던 사실이 밝혀졌다.
이일병 연세대 명예교수는 '일병씨의 행복여행'이라는 제목으로 운영하는 블로그에 올해 2월 초부터 중순까지 베트남 호치민 지역 여행을 다녀온 일에 대한 상세한 글을 올렸다. 게시물에 따르면 그는 대형 해산물 가게 등 유명 음식점을 방문했으며, 현지 테니스도 즐겼다. 또 관광객 대다수가 몰리는 전쟁박물관과 호치민시 박물관도 다녀온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는 아시아 지역을 중심으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세가 짙어지면서 우려가 커지고 있던 시기다. 베트남에서는 1월 말 첫 확진자가 발생한 뒤 호치민, 하노이 등 주요도시에서 확진자가 속출했다. 이후 한 달 만인 3월 초에는 60명이 넘는 국민이 양성 판정을 받았다.
해당 여행의 경우 외교부가 인근 주요 국가에 대한 여행 자제 권고를 내리기 이전이다.
그러나 외교부가 코로나19가 확산으로 모든 국가에 '특별여행주의보'를 내리고 국민들에겐 해외여행을 자제해달라고 권고한 지난 3월 이후에도 이일병 명예교수는 그리스 여행을 계획했다.
이일병 명예교수는 같은 블로그에 지난 6월 그리스 여행을 계획했다가 취소했던 일에 대한 상세한 내용을 기재했다. 그는 그리스로 가는 비행기 편까지 예약했으나 외교부의 입국 관련 문제로 여행이 취소됐다는 게시물을 올렸다.
그는 해당 글에 숙소 예약 여부와 외국에서 사용할 체크카드 신청, 아테네 국립 박물관과 이로드 아티코스 극장 등을 방문할 계획 등을 상세히 남겼다.
이어 그는 귀국 비행기 표를 예약하지 않았다고 전하면서 "생각하는 배(요트)를 계약하면 그냥 귀국하지만 마음에 들지 않으면 덴마크나 불란서(프랑스) 캐나다 미국 같은 다른 곳 가볼 여지 때문. 또 이왕 갔으니 근처 관광도 좀 하다 올까 해서"라고 덧붙였다. 장기 여행을 계획하는 듯한 발언으로 풀이된다.
당시는 외교부가 전 세계 국가를 상대로 특별여행주의보 기간을 연장하던 시기일 뿐더러 그리스 등 유럽 지역을 중심으로 빠르게 코로나19 확산세가 퍼지는 시점이다.
이 같은 계획 끝에 이일병 명예교수는 이달 초 고가의 요트 구입, 여행 등의 목적으로 미국 여행길에 올랐다.
이일병 "내 삶을 사는 것"…강경화 "남편에게 귀국 얘기 어려워"
이일병 명예교수는 출국 현장에서 강경화 장관이 여행에 동의했느냐는 질문에 대해 "서로 어른이니까 놀러 가지 말아야 한다, 그런 건 아니다"라며 "내 삶을 사는 건데, 다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느냐 (하는 것) 때문에 양보해야 하느냐"고 언급했다.고위공직자 가족에게 요구되는 도덕적 행위보다는 개인의 자유가 우선이며, 부부간이라도 개인 여행에 대한 권한은 없다는 설명이다.
강경화 장관 또한 논란에 대해 사과를 하면서도 남편에 당장 귀국 요청을 하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이에 국민 정서를 고려하지 못한 대응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4일 오후 강경화 장관은 외교부 청사를 나가면서 기자들과 만나 배우자 관련 논란에 대해 "송구스럽다"라면서도 "(남편이) 워낙 오래 계획하고 미루고 미루다가 간 것이라서 귀국하라고 얘기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라고 답했다.
또 강경화 장관은 여행계획을 사전에 알고 있었다고 밝혔다. 그는 "이런 상황에 대해서는 본인도 잘 알고 있고 저도 설명하고 했습니다만 결국 본인도 결정해서 떠난 거고 어쨌든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에 야당은 물론이고 여당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거세지고 있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이날 서울 마포구 토끼똥공부방에서 코로나19 돌봄 취약 관련 현장간담회를 마친 뒤 기자들과 만나 강 장관 배우자 여행 관련 논란에 대해 "국민의 눈으로 볼 때 부적절했다고 생각한다"고 언급했다.
김태년 민주당 원내대표 또한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고위 공직자에, 여행 자제 권고를 내린 외교부 장관의 가족이 한 행위이기 때문에 적절하지 않은 행위라고 본다"고 지적했다.
신영대 민주당 대변인은 논평에서 "(강경화 장관 남편의 해외여행은) 적절하지 않은 처신,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은 부적절한 처사임이 분명하다"며 "명절 귀성길에 오르지 못한 수많은 국민께 국무위원의 배우자로 인해 실망을 안겨 드린 점에 유감을 표한다"고 전했다.
야당은 "국민에게 위로를 주지는 못하고 절망과 분노만 가져다주는 정부"라며 비판했다.
최형두 국민의힘 원내대변인은 이날 오전 구두 논평을 통해 "국민들은 정부의 해외여행 자제 권고에 따라 긴급한 해외여행을 자제하고 추석 성묘조차 못갔다"며 "정작 정부 주무부처인 외교부 장관 남편은 마음대로 해외여행을 떠난다니 믿기 어렵다. 이게 제대로 된 문명국가인가"라고 날을 세웠다.
이어 최형두 대변인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에서 우리 국민들은 앞으로도 경험하지 못할 추석을 보내고 있다"며 "외교장관은 가족에만 특별 해외여행 허가를 내렸나"라고 꼬집었다.
김수현 한경닷컴 기자 ksoohy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