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도심 주택공급 확대를 위해 도입된 ‘공공재개발’에 참여하려는 주민들이 늘고 있다. 옛 한남1구역과 장위9구역에 이어 전농9예정구역도 의향서를 제출할 계획이다. 그러나 정부가 마련하려는 투기 방지 대책이 원주민들의 재산권 행사에 제약이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5일 정비업계에 따르면 전농·답십리뉴타운 전농9예정구역추진위원회는 이번 주 중 동대문구청에 공공재개발 사전의향서를 제출할 예정이다. 구역지정 절차를 밟고 조합을 설립해 사업을 끌고가는 것보다 속도가 빠르다는 계산에서다. 김삼근 전농9구역 추진위원장은 “일반 재개발 방식은 반대하는 주민 비율이 높으면 조합설립 동의율 75%를 충족하기 힘들다”며 “사업 속도를 높이기 위해 공공재개발 의향서를 제출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공공재개발은 LH(한국토지주택공사)나 SH(서울주택도시공사) 등 공공이 사업시행자로 참여하는 재개발사업이다. 새 아파트의 조합원분을 제외한 물량 중 절반을 공공주택으로 지어 공공성을 높인다. 대신 인·허가 절차를 간소화하고 종(種) 상향과 분양가 상한제 면제 등의 혜택을 준다. 지난 ‘5·6 부동산 대책’에서 도입된 이후 ‘8·4 부동산 대책’에서 해제구역까지 대상지가 넓어지자 옛 한남1구역과 장위9구역 등이 일찌감치 신청했다.
전농9구역은 2004년 정비예정구역으로 지정됐지만 16년째 구역지정을 받지 못했다. 2016년엔 직권해제 위기까지 몰렸다가 주민투표로 기사회생했다. 지난해 주민입안제안을 통해 구역지정을 요청했지만 동의율 재검증 등으로 절차가 미뤄지자 아예 공공재개발을 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공공재개발에서 LH나 SH 등 공공을 조합과 공동시행자로 지정하려면 토지등소유자 50%의 동의를 얻으면 된다. 전농9구역은 아직 추진위 단계여서 공공의 단독시행만 가능하다. 이땐 66.7%의 동의가 필요하다. 그러나 조합 설립에 필요한 토지등소유자 동의율이 75%인 점을 감안하면 이마저도 사업 소요 기간을 크게 줄일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하지만 정부가 도입하려는 투기 방지 대책이 자칫 주민들에게 독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정부는 공공재개발구역의 조합 정관을 변경해 원주민이 아닌 승계조합들의 분양가를 높일 계획이다. 조합원 분양가나 일반분양가가 아닌 주변 시세대로 새 아파트를 받도록 한다는 방침이다. 입주권 투자 수요를 원천적으로 봉쇄하겠다는 의미다.
이 경우 입주권을 승계하려는 이들이 없기 때문에 원주민들의 주택 매각도 사실상 불가능해진다. 재개발은 재건축과 달리 사업 추진에 동의하지 않았더라도 일단 동의율이 충족되면 강제로 조합에 가입된다. 분양가 관련 규정이 재산권 행사를 침해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정비업계 관계자는 “불가피하게 집을 매각해야 할 경우 재산을 처분할 길조차 막힐 수 있다”며 “정관 변경의 기준을 어느 시점부터 적용할 것인지가 쟁점”이라고 말했다.
재개발사업에서 늘 문제가 되는 ‘지분 쪼개기’ 관련 규정은 강화된다. 지분 쪼개기란 분양 대상자를 늘리기 위해 단독주택을 허물로 빌라를 짓는 등의 행위를 말한다. 국토교통부와 서울시는 공공재개발 구역들의 권리산정 기준일을 사업 공모일인 지난달 21일로 통일할 계획이다. 이날 이후의 지분 쪼개기는 인정하지 않겠다는 의미다.
권리산정일은 통상 구역지정 시점에 고시된다. 아직 구역지정이 되지 않은 곳(예정구역 제외)이 공공재개발 대상지로 선정돼 향후 구역지정을 받는다면 권리산정일은 지난달 21일로 소급되는 셈이다. 신축 빌라를 건설 중인 이들과 공공재개발을 추진하는 주민들 사이에서 분쟁이 발생할 수 있다. 서울시 관계자는 “권리산정일이 공모일로 일괄 적용되는 건 공공재개발을 신청해 새롭게 구역지정을 받는 곳에 제한된다”면서 “이미 구역지정을 받은 정비구역은 기존 권리산정일이 적용된다”설명했다.
전형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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