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초엽 듀나 등 한국을 대표하는 SF(공상과학소설) 작가 6인이 전염병을 주제로 쓴 단편을 모은 소설집 《팬데믹》(문학과지성사·사진)이 출간됐다.
소설은 ‘멸망: 끝과 시작’ ‘전염: 전염의 충격’ ‘뉴 노멀: 다시 만난 세계’라는 소주제로 두 편씩 묶었다. 김초엽과 듀나는 멸망의 순간에도 사랑하고 꿈꾸는 자들의 이야기를 꺼내든다. 김초엽의 ‘최후의 라이오니’는 멸망한 문명을 탐사해 자료와 자원을 채취하는 로몬족인 ‘나’가 거주구 3420ED를 탐사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나’는 그곳의 역사와 남아 있는 기계들과의 만남을 통해 자신의 존재 이유를 알아간다. 듀나가 쓴 ‘죽은 고래에서 온 사람들’은 초광속 우주선을 타고 지구를 떠나 낯선 행성에 뿌리내린 인류를 보여준다.
정소연의 ‘미정의 상자’는 전염병으로 초토화된 수도권을 버리고 남쪽으로 내려가던 미정이 금속 상자를 줍게 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과거로 거슬러가며 전염병 이전의 삶을 새롭게 발견해 가는 미정의 서사는 코로나19 이후 삶과도 겹쳐 보인다. 김이환이 쓴 ‘그 상자’는 전염의 공포에 눌려온 시간 동안 방치해온 생활공간을 비롯해 연명하는 것 이상의 인간다움을 누릴 수 없는 삶에 주목한다.
배명훈과 이종산은 전염병의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속에서 새로운 관습과 질서가 자리잡은 100여 년 이후 모습을 그려냈다. 배명훈의 ‘차카타파의 열망으로’에선 발음하다 보면 침이 튀기 마련인 격음과 경음 일부가 없어진 한국 이야기를 담았다. 이종산의 ‘벌레 폭풍’은 벌레떼에 바깥세상이 점령돼 모두 실내에서 노동과 생활을 해결하는 세계를 그렸다.
은정진 기자 silve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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