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6일(현지시간) ‘진보의 아이콘’으로 꼽혔던 고(故)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연방대법관의 후임에 보수주의자인 에이미 코니 배럿 제7연방고법 판사를 지명한 가운데, 배럿 지명자의 이력에 관심이 쏠린다.
총 9명으로 구성된 연방대법관(대법원장 포함)은 미국 헌법을 수호하는 최후의 보루로, 막강한 권력을 가진 자리다. 종신제여서, 죽을 때까지 자리를 지킬 수 있다.
1972년 생인 배럿은 올해 만 48세다. 미 전역에 13개인 항소법원 중 제7연방고법에서 판사로 일해왔다. 항소법원 판사로 선임된 것도 트럼프 대통령 당선 직후인 2017년 5월이었다. 당시 트럼프가 지명하고 상원이 같은 해 10월 인준을 내줬다. 연방법원 판사로 재직하면서, 동시에 인디애나주 노터데임 로스쿨(법학대학원) 교수를 병행해 왔다.
루이지애나주 뉴올리언스 출신인 배럿은 6녀 1남의 형제·자매 중 장녀였다. 부친 역시 석유회사 셸의 사내 변호사였다. 미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대학 캠퍼스로 꼽히는 테네시주 로즈 칼리지에서 영문학을 전공했다. 최우수 성적으로 졸업한 뒤 전액 장학금을 받고 노터데임 로스쿨로 진학했다.
남편 역시 변호사다. 남편인 제시 배럿은 인디애나주의 로펌인 사우스뱅크 리걸 파트너로 일하고 있다. 배럿은 자녀를 7명 두고 있다. 올해 8~19세다. 이 중 두 명은 중미의 빈국인 아이티에서 입양한 아이들이다. 배럿이 직접 출산한 막내 아이는 다운 증후군을 앓고 있다.
천주교를 믿고 있는 배럿은 낙태를 반대하는 대표적인 보수주의자다. 본인도 임신 초기에 막내 아이의 다운 증후군 가능성을 알면서 출산을 강행했다.
배럿이 당장 연방대법관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상원 인사청문회 등 인준 절차를 거쳐야 해서다. 다만 여당인 공화당이 상원 다수석(100석 중 53석)을 차지하고 있어 인준안이 통과될 가능성이 높다.
공화당은 미국 대선(11월 3일) 이전인 다음달 말 인사청문회를 연 뒤 10월 29일 이전에 인준안 표결에 나설 것이란 게 미 언론들의 보도다. 공화당 계획대로라면 대법관 후보 지명 후 한달여 만에 인준 절차를 끝내는 것이다. 그동안 역대 대법관 인준 절차 완료에 걸린 시간은 평균 71일이었다.
변수는 민주당의 반발 정도다. 민주당은 트럼프의 속전속결식 대법관 지명이 대선 후 선거 불복을 위한 사전 정지 작업이 아닌지 의심하고 있다. 트럼프는 최근 들어 우편 투표의 부정 가능성을 들어, 만약 대선에서 질 경우 승복하지 않을 수 있음을 시사해 왔다. 트럼프는 2016년 대선 때도 “역사적인 대선의 결과에 100% 승복할 것이다. 내가 이길 경우에만.”이라고 연설한 적이 있다.
배럿 대법관 지명자가 취임하면, 미국에선 역대 5번째 여성 대법관이 된다. 또 1991년 43세의 클래런스 토머스 대법관 이후 두 번째로 젊은 대법관이 탄생하는 기록도 세우게 된다.
연방대법관의 정치적 성향이 보수 절대 우위로 바뀌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9명의 대법관 중에서 보수 진영이 배럿을 포함해 6명으로 늘기 때문이다. 의료보험과 총기 규제, 낙태 등 주요 사안에서 보수적 판결이 이어질 수 있다는 의미다.
뉴욕=조재길 특파원 road@hankyung.com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