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노 입자’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데이터 분석 기관 클래리베이트 애널리틱스가 올해 노벨화학상 수상 유력 후보로 현택환 서울대 화학생물공학부 석좌교수를 선정하면서다. 현 교수는 균일한 나노 입자를 만드는 ‘승온법’을 세계 최초로 개발한 석학이다. 차세대 TV인 QLED(퀀텀닷 발광다이오드) TV의 밑바탕에 그의 기술이 들어가 있다. QLED TV는 크기와 전압에 따라 스스로 빛을 내는 반도체 나노 입자인 ‘퀀텀닷(양자점)’ 소자로 구성된 TV다.
1~100나노미터(㎚) 크기 결정인 ‘나노 입자’ 개념은 50여 년 전 처음 등장했다. 현재는 신소재, 바이오 신기술과 물리학 연구 대부분이 나노 입자에 의존할 정도로 중요성이 커졌다.
한국원자력연구원은 연세대·전북대, 서린바이오사이언스, 미국 오크리지 국립연구소와 함께 난치성 질환을 진단할 수 있는 ‘DNA(데옥시리보핵산)-은 나노 클러스터’ 원리를 규명했다고 최근 밝혔다.
DNA-은 나노 클러스터는 인공적으로 만든 ‘합성DNA’에 은 나노 입자를 넣은 것을 말한다. 암, 치매 등 난치성 질환을 갖고 있는 환자의 체내 DNA 또는 RNA(리보핵산)에 달라붙어 빛을 내면서 질환의 유무나 경중 등을 알려주는 신소재다. 합성DNA 꼬리(말단) 부위에 은 나노 입자를 넣으면 적색·청색 등 다양한 색이 발광하는데,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지 그동안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한·미 공동 연구팀은 합성DNA를 ‘엇갈린 집게 모양 머리핀’ 모양으로 만든 뒤 은 나노 입자를 넣으면 오렌지색 발광이 가장 강렬하게 일어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원자력연 내 특수시설(중성자 소각산란 장치)을 이용해 5년간 연구한 결과다. 이번 연구를 주도한 정일래 원자력연 책임연구원은 “암 진단의 정확도와 민감성을 높일 수 있는 원천 기술”이라고 설명했다.
신소재를 합성할 때도 나노 입자를 주로 쓴다. KAIST와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은 미 드렉셀대 연구팀과 함께 신소재 ‘맥신’을 초박막 필름으로 제조하는 기술을 확보했다. 맥신은 티타늄과 몰리브덴, 하프늄 등 금속 원자와 탄소 원자로 구성돼 있는 2차원 나노 소재다. 전기 전도성이 뛰어나 ‘꿈의 신소재’로 불린다.
연구팀은 특수 나노 공법으로 대면적 초박막 맥신 필름을 55㎚ 두께로 만들면 전자파를 99% 이상 막을 수 있음을 보였다. 유연 전자소자, 5세대(5G) 이동통신 기기 등에 적용 가능한 기술이다.
나노 입자가 치매를 예방할 수 있다는 연구결과도 나왔다. KAIST와 KIST는 미 아르곤국립연구소와 함께 치매 원인물질인 베타-아밀로이드를 흡입, 제거할 수 있는 나노 입자를 최근 개발했다. 치매는 세포 밖 베타-아밀로이드 단백질 찌꺼기와 세포 내 타우 단백질이 신경 섬유 다발에 뭉쳐 축적될 때 발생한다. 연구팀은 베타-아밀로이드에 선별적으로 달라붙어 없앨 수 있는 특수 항체 ‘scFv’를 제작한 뒤 2~50㎚ 크기의 실리카(규소 산화물) 나노 입자에 실었다. 이를 쥐의 뇌에 투입한 결과 대조군에 비해 베타-아밀로이드 축적률이 80% 이상 감소했다.
연구팀 관계자는 “응용 범위를 넓히면 체내 다양한 유해물질을 선택적으로 제거할 수 있는 ‘나노 청소기’ 개발로 이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해성 기자 ih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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