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가 전기차 배터리의 핵심 소재인 동박(전지박) 제조사 두산솔루스에 3000억원을 투자한다. 자동차 배터리 소재 분야로 사업 영역을 넓히기 위한 포석이란 분석이 나온다. 롯데는 주력 사업인 유통, 면세점, 호텔 관련 계열사들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등으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어 대대적인 사업 재편을 검토 중이다.
경영권 인수 대신 재무적 투자
롯데정밀화학은 23일 이사회를 열어 사모펀드 스카이레이크프라이빗에쿼티가 두산솔루스 인수를 위해 설립하는 펀드(스카이스크래퍼 롱텀스트래티직)에 2900억원을 출자하기로 결정했다. 스카이레이크는 이달 초 두산솔루스 지분 52.9%를 6986억원에 인수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롯데정밀화학은 재무적투자자(LP) 형태로 두산솔루스 지분 인수에 참여한다. 롯데의 또 다른 계열사도 이 펀드에 100억원을 투자한다. 롯데는 두산솔루스 인수자금의 약 42%를 담당한다.두산솔루스는 자동차 배터리 분리막의 소재로 쓰이는 동박을 생산한다.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는 두산그룹이 재무구조 개선을 위해 올초부터 매각을 검토해왔다.
롯데는 당초 스카이레이크와 함께 두산솔루스 인수 유력 후보로 꼽혔다. 국내 5대 그룹 가운데 전기차 배터리 관련 사업에 가장 취약하다는 평가를 들었기 때문이다. 삼성은 삼성SDI, SK는 SK이노베이션, LG는 LG화학 등을 통해 전기차 배터리 사업을 하고 있다. 기술과 생산능력 면에서 모두 세계 최고 수준이다. 현대차는 이들 기업과 손잡고 전기차를 양산 중이다.
5대 그룹 중 롯데만 전기차 배터리 분야에서 이렇다 할 사업 영역을 구축하지 못한 상태지만 지난 6월 두산솔루스 매각 입찰에 참여하지 않았다. 롯데가 예상한 것보다 인수 금액이 훨씬 컸기 때문이다. 롯데 관계자는 “실적에 비해 기업가치(밸류에이션)가 너무 높았다”고 했다.
롯데는 그러나 놓치기에는 아까운 ‘매물’이라고 판단해 ‘차선책’으로 투자를 택했다. 투자자 형태로 두산솔루스 인수에 참여해 배터리 소재 사업의 가능성을 엿보겠다는 의도였다. 배터리업계 관계자는 “롯데가 전략적으로 배터리 소재 사업을 한다고 판단하면 향후 스카이레이크로부터 두산솔루스 경영권을 인수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롯데케미칼도 배터리 사업 가능성
롯데의 이번 투자는 전기차 배터리 소재 사업 확장에 대한 의지를 엿볼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 분석이다. 롯데는 작년부터 배터리 소재 분야 투자에 본격적으로 나서고 있다. 배터리 소재인 양극재·음극재 사업을 하는 일본 히타치케미컬 인수를 추진했다. 최종 성사되지 않았지만 히타치케미컬을 인수한 일본 쇼와덴코 지분을 일부 매입하며 간접적으로 이 사업에 진출했다.그룹 내 계열사에서도 배터리 소재 사업에 나섰다. 롯데알미늄이 지난 2월부터 헝가리에 배터리 양극박 생산 공장을 짓고 있다. 투자 금액이 1100억원에 이른다. 내년 상반기 완공 예정인 이 공장에선 국내 주요 배터리 업체에 소재를 공급한다. 롯데알미늄 국내 공장에서도 배터리 소재 제품을 시험 생산하고 있다.
롯데그룹의 주력 계열사 롯데케미칼도 배터리 소재 분야 진출을 꾸준히 검토 중이다. 경쟁사 LG화학이 석유화학 사업을 기반으로 세계 1위 배터리 업체로 성장한 영향이 컸다. 롯데 관계자는 “환경 이슈로 석유화학 사업이 장기적 관점에서 유망한지 그룹 내부에서도 회의적인 시각이 일부 있다”며 “배터리 소재를 비롯한 사업의 구조적 전환을 꾸준히 검토하고 있다”고 전했다.
스카이레이크는 두산솔루스를 글로벌 대표 전기차 핵심 소재 종합 기업으로 키운다는 계획이다. 이를 위해 올해 안에 45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진행해 투자금 확보에 나선다. 자금은 헝가리 공장 증설에 사용할 전망이다. 인수를 마무리하는 대로 국내 배터리업계 전문가를 경영진으로 영입, 조직개편에 나선다는 계획도 세웠다.
차준호/김채연 기자 chac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