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한 제조업체 한국지사에서 근무하는 A씨는 올 들어 아직까지 한 번도 본국에 돌아가지 못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출입국 절차가 강화돼 2박 3일 일정으로 본사에 다녀오려면 양국에서 자가격리를 하는 데만 한 달여가 걸리기 때문이다. A씨는 "대규모 투자 전에는 실사 등 대면소통 과정이 반드시 필요한데 본국으로 돌아가지도, 본사에서 한국으로 건너오지도 못해 사실상 투자가 끊긴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23일 서울시에 따르면 시는 이 같은 외국 기업인의 고충을 수용해 법무부와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등에 외국 기업인에 대한 2주 자가격리 규정 완화 검토를 요청하기로 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해외 출장이 어려워 본사와 자회사 간 비대면 면담만 하다 보니 사업 진행에 문제가 있다는 외국계 기업의 민원이 많다"며 "자가격리 규정이 완화되면 보다 원활하게 사업 추진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해외 국가들도 코로나19 장기화로 기업 활동이 어려워지자 최근 출입국 절차를 완화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베트남은 최근 한국과 중국, 일본 등과의 여객기 운항 재개를 허가했다. 이달 초에는 비행기 탑승 3일 전 코로나 음성 판정을 받고, 14일 이내 단기 출장을 오는 외국 기업인에게는 자가격리를 면제한다는 방침도 밝혔다. 대만은 지난 6월부터 국가별로 위험 수준을 판단해 기업인과 유학생 등의 자가격리 기간을 2주에서 5~7일로 줄여주고 있다.
기업인들은 이 같은 조치가 외국 기업인뿐만 아니라 한국 기업인들에게도 확대 적용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한국에서 해외 출장을 다녀오려면 비자 발급과 해외기업 초청장 수령부터 양국에서의 자가격리 기간까지 더하면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상황이라 사실상 출장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는 게 기업인들의 토로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지난 7월 국내기업인과 외투기업인 등의 출입국 제한조치를 완화해달라는 건의서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와 법무부, 외교부, 산업통산자원부 등에 제출하기도 했지만 별다른 대답을 받지 못했다.
이재수 전경련 지역협력팀장은 "지난해 기준 매출 상위 10대 기업의 해외 매출 비중은 38.7%에 달한다"며 "원활한 해외 사업 추진을 위해 교역 비중이 높은 주요 국가와의 출입국 제한조치 완화가 절실히 필요한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법무부는 신중한 입장이다. 법무부 관계자는 "자가격리 기준 완화 등은 중대본 등 방역당국에서 결정할 문제"라며 "관련 부처의 의견을 수렴해 신중하게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박종관/이인혁 기자 pj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