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롬 파월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은 16일(현지시간) 화상으로 연 기자회견에서 ‘강력한(powerful)’이란 단어를 10차례 사용했다. 장기 제로금리 유지를 골자로 한 새로운 정책 방향을 설명하면서다. 그만큼 인위적인 경기부양의 필요성이 절실하다는 방증이다.
소비·생산 회복세 다시 주춤
무엇보다 V자 회복세를 나타냈던 소비지표의 둔화 조짐이 뚜렷하다. 미 상무부가 이날 발표한 8월 소매 판매는 전월 대비 0.6% 늘어나는 데 그쳤다. 올해 5월 정점을 찍은 후 4개월 연속 둔화됐다. 고공행진을 하고 있는 실업률이 소비에 영향을 끼쳤을 것이란 분석이다.미 실업률은 올 4월 14.7%까지 치솟은 뒤 점차 떨어져 지난달 8.4%를 기록했다. 하지만 2월(3.5%)과 비교하면 여전히 2~3배 높은 수치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사라진 일자리 중 1200만 개가 아직 회복되지 않고 있다는 게 미 정부의 설명이다. 파월 의장도 “지난달 실업률이 낮아지긴 했지만 실제 실업자 중 상당수는 통계에 잡히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민간소비는 미 국내총생산(GDP)에서 3분의 2를 차지할 정도로 중요한 지표다. 소비가 살아나야 경제가 조기 정상화할 수 있다는 의미다. 미시간대가 산출하는 소비자태도지수 역시 지난달 74.1(1966년 12월=100)에 그쳤다. 전달(72.5)보다는 높아졌지만 6월 기록(78.1)을 크게 밑돌았다. 리처드 커틴 미시간대 이코노미스트는 “정부의 적극적인 재정지원이 없으면 소비지표가 더 악화할 것이란 뜻”이라고 설명했다.
Fed가 발표한 지난달 산업생산 역시 0.4% 증가하는 데 그쳤다. 전달(3.5% 증가)은 물론 시장 기대치(1.0%)에도 못 미쳤다. 경제 봉쇄령이 아직 완전히 풀리지 않고 있는 게 가장 큰 걸림돌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했다.
부동산·주식 시장만 호황
미 주택 및 주식시장엔 돈이 넘쳐나고 있다. 실물 경제를 떠받쳐야 할 경기부양 자금이 자산시장의 거품만 키우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미국주택건설업협회(NAHB)에 따르면 9월 주택시장지수는 83으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4월에 40까지 곤두박질쳤던 이 지수는 6월 58, 7월 72, 8월 78 등으로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이 지수가 50을 넘으면 주택 관련 체감경기가 좋다는 의미다. 주택 판매는 실제로 급증세다. 상무부가 최근 발표한 7월 신축 주택 판매량은 총 90만1000채로, 작년 동기 대비 36.3% 급증했다. 판매량만 봐도 2006년 이후 최대 규모다. 6월 4.7개월치였던 주택 재고는 한 달 만에 4개월치로 감소했다. 신축 주택의 평균 가격은 매달 역대 최고치를 경신 중이다.
다우와 S&P500, 나스닥 등 뉴욕증시 3대 지수는 이달 초 잠시 조정을 받았지만 최고 기록을 향해 순항 중이다. 코로나19 백신조차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자산시장에만 시중 자금이 쏠리고 있는 것이다.
“추가 부양·백신 없으면 회복 불가능”
올 2분기 -31.7%(연율 기준)를 기록했던 미 경제성장률은 3분기엔 큰 폭으로 반등할 게 확실시된다. 기저효과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골드만삭스는 3분기 성장률 전망치를 종전 30.0%에서 35.0%로 상향 조정하기도 했다.하지만 코로나19 이전 상황으로 회복하는 데 훨씬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란 관측이 힘을 얻고 있다. 세계적인 경제 봉쇄의 후유증이 단기에 그치지 않을 것이란 점에서다.
대니얼 바크먼 딜로이트 선임매니저는 지난 14일 발간한 미 경제전망 보고서에서 “추가 부양책 협상이 결렬되고 백신 출시가 늦어지면 미 경제는 코로나19 이전 수준으로 돌아가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뉴욕=조재길 특파원 ro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