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주요 기업 사이에선 수장 교체를 계기로 이들 단체의 체질도 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정부와 정치권의 각종 반기업 정책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있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라며 “협력할 것은 협력하되, 기업활동의 자유를 제한하려는 시도에는 단호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태원 회장 대한상의 맡을까
15일 경제계에 따르면 전경련과 무협은 내년 2월, 대한상의는 3월에 회장 임기가 끝난다. ‘경제 5단체’ 중 세 곳의 수장이 바뀌게 된다.차기 회장 인선을 수면 위로 끌어올린 사람은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이다. 박 회장은 최 회장을 직접 만나는 등 수차례에 걸쳐 차기 회장을 맡아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고사하던 최 회장은 최근 긍정적인 방향으로 선회한 것으로 알려졌다. SK 내부에서는 최 회장이 대한상의 회장을 맡게 되면 경영에 소홀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때때로 정부 정책과 다른 목소리를 내는 데 대한 리스크도 상당하다는 의견도 있었다. 경제계에서는 최 회장과 함께 정몽윤 현대해상화재보험 회장,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 등도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허창수 전경련 회장의 후임을 누가 맡을지도 관심이다. 2011년부터 전경련을 이끌어온 허 회장은 2017, 2019년에도 연임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으나, 후임을 찾지 못했다. 허 회장은 지난해 말 GS그룹 회장에서 물러난 만큼 전경련 회장직도 내려놓을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김영주 무협 회장의 뒤를 이를 차기 회장에는 전직 관료들이 관심을 두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전윤철 전 감사원장, 진념·이헌재 전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 등 원로급 전직 관료들의 이름이 오르내린다. 무협 회장은 사실상 정부가 정하는 자리다.
대한상의가 경제계 ‘맏형’?
관심은 단연 최 회장이 대한상의 회장을 맡을지 여부다. 최 회장이 맡을 경우 대한상의는 ‘재계 맏형’의 위상을 갖게 될 것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과거 50여 년간 재계의 맏형은 전경련이었지만, 2016년 국정농단 사태에 연루된 이후 역할이 축소됐다.4대 그룹 현직 회장이 오랜만에 경제단체를 이끈다는 의미도 작지 않다. 이병철 정주영 구자경 최종현 김우중 등 과거 주요 그룹 회장들은 전경련 회장을 맡았다. 전경련이 경제단체의 맏형으로 불린 이유다. 재계 고위 관계자는 “박 회장은 대한상의의 위상을 한 단계 높이고 싶어 한다”며 “의외의 인물이 후임으로 거론되자 최 회장을 더욱 적극적으로 설득하게 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현재로서는 최 회장이 결심하면 자연스럽게 차기 회장으로 추대될 분위기다. 최 회장이 대한상의를 이끄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는 목소리도 없진 않다. 대한상의가 과거 전경련처럼 역할하기도 쉽지 않다. 상공회의소법에 의해 설립된 법정단체인 대한상의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소상공인 등의 이해관계를 반영하고 때론 조율해야 하기 때문이다.
한 경제단체 부회장은 “대한상의가 경제계를 대표하는 데에는 구조적인 한계가 있다”며 “협력이익공유제와 같이 대기업과 중견·중소기업의 입장이 갈리는 사안이 불거지면 상당히 난처한 상황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전경련을 리모델링해야” 주장도
경제계 일각에선 전경련이 다시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길을 터주거나, 아예 새로운 경제단체를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문재인 정부 들어 대한상의와 한국경영자총협회 등이 과거 전경련의 역할을 하고 있지만,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4대 그룹의 한 임원은 “최근 상법 및 공정거래법 개정안처럼 기업을 옭아매는 법안이 잇따라 나오는데도 경제단체들이 일사불란하게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누가 될지는 아직 모르지만 차기 전경련 회장에 기업들이 주목하는 배경도 이 때문이다. 차기 회장은 회원사를 다시 늘리는 등 전경련의 역할과 위상을 회복시키는 게 급선무가 될 전망이다. 전경련 회원사들의 의견이 모인다면 임기를 1년 이상 남겨둔 손경식 경총 회장이 자리를 옮겨올 수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경제계에서 신망이 두텁고 현 정부와 정치권과도 두루 관계가 원만한 원로라는 평가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도병욱 기자 dod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