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시에서 ‘개미’는 개인투자자를 상징하는 동물이다. 과거 개미들은 주식투자에서 쓴맛을 보는 일이 많았다. 시장의 큰손인 외국인과 기관투자가에 비해 자본력, 정보력, 투자지식 등에서 모두 밀렸기 때문이다. 그랬던 개미의 위상이 몰라보게 달라졌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외국인 투자자들이 한국 주식을 계속 팔아치우는 가운데 개인들은 공격적인 매수에 나서고 있다. “우리나라 좋은 주식, 우리가 사 모으자”는 결기마저 느껴지는 이 현상은 이른바 ‘동학개미운동’이라고 불린다.
코로나19가 불러온 새 풍속도
동학개미운동에 불을 붙인 것은 코로나19였다. 올 1월 2일 2175.17로 출발한 코스피지수는 코로나 공포가 급속히 퍼진 3월 19일 1457.64까지 떨어졌다. 두 달여 만에 30% 넘게 폭락한 것이다. 그러자 개인투자자 사이에서 “우량주를 싸게 살 절호의 기회”라는 분위기가 퍼졌다. 중장년층은 물론 주식투자 경험이 없던 20~30대 직장인도 몰려들었다. 때마침 시중에는 저금리, 부동산 규제 등으로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한 돈이 넘쳐나고 있었다.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올 1~8월 개인투자자의 유가증권·코스닥시장 순매수 금액은 51조1700억원으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외국인이 28조2709억원, 기관이 22조8583억원을 순매도한 것과 정반대다. 외국인·기관이 던진 매물을 개인이 모두 받아내면서 주가지수 상승에 기여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주식을 사기 위한 대기자금으로 볼 수 있는 투자자 예탁금도 8월 말 54조7561억원으로, 역대 최고치였다.
지금까진 동학개미들의 기대가 적중했다. 언택트(비대면) 수혜주는 좋은 실적을 냈고, 단기 급락한 주가는 반등에 성공했다. 지난달 31일 코스피지수는 2326.17로 마감했다. 코스피지수가 바닥을 친 3월에 진입했다면 평균 50% 넘는 수익률을 거둘 수 있었다는 얘기다.
동학개미 넘어 서학개미도 등장
코로나19 이후 해외 증시에서도 개인투자자가 주목받고 있다. 한국에 동학개미가 있다면 미국에는 ‘로빈후드’가 있다. 개인들이 로빈후드라는 증권거래 앱을 주로 쓴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미국 나스닥종합지수 역시 3월에 바닥을 찍고 40% 이상 반등했는데, 로빈후드 투자자의 역할이 컸다는 분석이 나온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월가 베테랑들이 겁낼 때 개인투자자들은 모험을 하고 있다”고 했다. 일본에선 ‘닌자개미’, 중국에선 ‘청년부추’로 불리는 20~30대 개인투자자가 증시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한국을 벗어나 해외 주식을 사들이는 개인을 뜻하는 ‘서학(西學)개미’라는 신조어도 생겼다. 국내 투자자의 해외 주식 보유 잔액은 올 들어 123% 급증해 8월 말 322억달러(약 38조원)에 달했다. 서학개미는 테슬라,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알파벳 등 미국 기술주를 많이 샀다. 테슬라의 경우 한국인 보유 주식이 36억달러(약 4조원)어치에 달해 ‘10대 주주’ 수준이다.
존재감이 높아진 동학개미들은 금융정책에도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정부가 9월 말로 끝내려 했던 ‘공매도 금지’를 6개월 더 연장한 것이 대표적이다. 개인들은 “공매도는 외국인·기관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제도”라고 주장해왔다. 동학개미운동은 코로나 사태로 휘청이던 주식시장에 새 바람을 불어넣었다는 점에서 긍정적 평가를 받는다. 다만 단기간 고수익만 노리고 겁 없이 뛰어든 개인이 많다는 점에서 우려도 나온다. “빚내서 무리하게 투자하면 안 된다”는 것은 많은 주식 전문가의 공통된 경고다.
임현우 한국경제신문 기자 tard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