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3월, 영국 기업 딥마인드의 인공지능(AI) ‘알파고’가 세상을 놀라게 한 것처럼, 2020년에는 미국 기업 오픈AI(OpenAI)가 지난 6월 발표한 AI ‘GPT-3’가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하고 있다. GPT-3는 인터넷상에 존재하는 모든 영어 문서를 학습 데이터로 사용해서 훈련했다. 훈련의 목적은 단 하나, N개의 단어를 주면 N+1번째 나올 단어를 가장 잘 예측하는 것이다. 이렇게 학습한 GPT-3에 N개의 단어를 새로 주면 N+1번째 단어를 내뱉고, 이 단어를 다시 집어넣으면 N+2번째 단어를 내뱉는다. 이런 방식을 반복해 문장을 구성해가는 기계를 개발했다.
GPT-3는 유료로 공개하고 있는데, 많은 기업과 개인이 사용을 기다리고 있다. 이미 사용권을 획득한 회사들은 GPT-3를 이용해 여러 서비스를 만들어 선보이고 있다. △이메일을 회신할 때 핵심 포인트만 적으면 어느 정도 이메일을 완성해주는 서비스 △구인 공고를 낼 때 핵심 단어만 넣으면 공고문을 만들어주는 서비스 △회사의 제품이나 서비스 특징을 집어넣으면 적절한 광고문안을 생성해주는 서비스 △간단한 웹디자인 문서나 앱 디자인 프로그램을 생성해주는 서비스 등이다.
GPT-3가 하나의 서비스 엔진이 되고, 응용서비스 기업들이 이를 활용해 고유의 서비스를 최종 고객에게 제공하는 생태계 구축이 시도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정확도다. GPT-3는 오직 언어적으로만 학습했기 때문에 시공간적 상식이나 인과관계, 동기 부여 등에 대한 지식이 필요한 응용 분야에서는 어이없는 실수를 저지른다. 그러나 이메일 회신, 채용 문서 생성, 광고문 생성, 간단한 웹·앱 디자인 프로그래밍 등에서 초안을 빨리 생성해 인간 사용자의 생산성을 올려주는 도구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줬다.
또 GPT-3는 AI를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에 대한 시사점을 준다. GPT-3는 아직 완벽하지 않다. 따라서 완전 자동화 형태로 비즈니스에서는 사용하지 못한다. 인간 사용자의 도구로만 사용될 수 있다. 기계학습 시스템은 완벽할 수 없다. 인간의 예상과 다르게 실수할 수 있기 때문에, 어쩌면 인간을 도와줄 수 있다는 역설이 성립한다. 자율주행차도 비슷하다. 실수할 수밖에 없는 기계학습 시스템의 특성 때문에 운전자가 없는 완전자율주행차는 당분간 그 실현이 어려울 것으로 필자는 보고 있다. 기계학습에 의한 자율주행기술은 운전자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운전자를 돕는 형태로 발전할 수밖에 없으며, 이는 기계학습 기술의 특성에 따라 어쩔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다.
AI 과학은 늘 전진하면서도 한계를 보여주고, 그 한계를 뛰어넘기 위한 다른 진로를 제시해 왔다. GPT-3는 놀라우리만큼 문장 생성을 그럴듯하게 해내고, 사용자의 질문에 그럴듯한 답을 내고 있지만, 이는 과거의 문장을 학습해 새롭게 주어진 문장의 바로 다음에 나올 가장 그럴듯한 단어를 찾아내는 방식으로만 작동하므로, 상식적으로 존재 불가능한 것에 대한 질문에 자신 있게 “그런 질문을 왜 하느냐”고 반응하지 못하고, 어떻게든 답을 마련하려고 애쓴다. 예를 들어, “기린의 눈은 몇 개지?”라고 물으면 2개라고 잘 답하지만, “내 발의 눈은 몇 개지?”라고 물어도 2개라고 답하는 실수를 한다. “발에 눈이 어디 있어요?”라고 감히 말하지 못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한계를 관찰한 AI 연구자들은 새로운 방책을 벌써 제안하고 있다. 그사이에 GPT-3는 인간 사용자와 협업하면서 새로운 서비스를 창출하고, 생산성에 기여할 것이다. 또 이런 자동화 기술은 기존의 직업을 없애기보다는 새로운 서비스를 창출하고, 새로운 사업 모델을 만들어낼 것이다.
예를 들어, 축구 경기 영상을 분석하는 한국의 AI 스타트업 비프로일레븐은 GPT-3 기술을 응용해 축구경기 자동 중계 아나운서 서비스를 선보일 수 있다. 그러면 기존의 축구 중계 아나운서들은 직업을 잃게 될까? 그렇지 않다. 오히려 동네 축구, 조기축구회 경기를 유튜브로 중계하는 서비스가 나와 동네 축구 소년·아저씨들 중에 스타가 나오게 될 것이다. 새로운 스포츠 문화와 사업이 생겨날 수 있는 것이다. AI는 이렇게 새로운 서비스·사업·문화를 창출한다. 그것이 AI의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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