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권 불법승계 의혹’을 받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결국 법정에 서게 됐다. 외부 전문가들로 구성된 검찰수사심의위원회가 지난 6월26일 이 부회장을 불기소하고 수사를 중단할 것을 검찰에 권고했지만, 검찰은 67일간의 장고 끝에 기소를 강행했다. 오히려 이 부회장의 공소장에는 지난 6월 구속영장 청구서엔 담기지 않았던 ‘업무상 배임’ 혐의가 추가됐다.
서울중앙지방검찰청 경제범죄형사부(부장검사 이복현)는 이 부회장을 자본시장법 위반(부정거래 및 시세조종)과 외부감사법 위반, 업무상 배임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고 1일 밝혔다. 배임 혐의는 지난 6월 구속영장을 청구할 때만 해도 없었지만 이날 포함됐다.
최지성 전 삼성 미래전략실장(부회장)과 김종중 전 미전실 전략팀장(사장), 장충기 전 미전실 차장, 최치훈 삼성물산 이사회 의장, 김신 전 삼성물산 대표 등 전·현직 삼성 임직원 10명도 이 부회장과 함께 재판에 넘겨졌다. 지난해 검찰이 구속영장을 두차례 청구했으나 모두 기각된 김태한 삼성바이오 대표도 이날 기소 대상에 포함됐다. 김종중 전 사장과 김신 전 대표의 경우 ‘국정농단 사건’ 재판 과정에서 위증을 한 혐의로도 기소됐다.
2018년 11월 금융위원회 산하 증권선물위원회의 고발로 시작된 이번 수사는 1년9개월여 만에 마침표를 찍고, ‘법원의 시간’을 맞게 됐다. 삼성바이오가 회계분식을 저질렀고 2015년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이 합병하는 과정에서 중대한 사기적 부정거래가 있었다는 게 검찰의 판단이다. 또 이 부회장이 이 과정에 개입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법원과 외부 전문가들의 판단은 달랐다. 검찰이 청구한 이 부회장의 구속영장은 지난 6월 기각됐다. 수사심의위는 10대 3이라는 압도적인 표결로 이 부회장 수사를 중단해야 한다고 결론냈다.
법조계와 산업계에선 검찰이 검찰권 남용을 막기 위해 스스로 수사심의위를 만들어 놓고, 이들의 결론을 따르지 않아 제도를 무력화시켰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검찰이 수사심의위 이후 신속하게 결론을 내리지 않고 두달 넘게 침묵을 지키다가, 수사팀장의 인사이동을 앞두고 더 이상 시간을 끌 수 없게 되자 기소를 한 것도 지나친 검찰편의주의라는 평가다.
반면 검찰 관계자는 “수사심의위의 불기소 권고 이후, 법률?금융?경제?회계 등 외부 전문가들의 비판적 견해를 포함한 다양한 의견을 청취하고 수사내용과 법리, 사건처리방향 등을 전면 재검토했다”며 “그 결과 학계와 판례의 다수 입장, 증거관계로 입증되는 실체의 명확성, 사안의 중대성과 가벌성, 사법적 판단을 통한 국민적 의혹 해소 필요성 등을 감안해 주요 책임자를 기소했다”고 밝혔다.
당초 이 부회장의 기소유예나 불기소 처분을 기대했던 삼성 측은 망연자실한 모양새다. 이 부회장이 앞으로 수년간 주 3회씩 재판을 받으러 법정에 출석해야 하는 만큼, 삼성의 대규모 투자 등 주요 의사결정 구조가 늦어지는 등 리더십 공백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크다.
이인혁 기자 twopeopl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