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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뺀 공공조달…중국産만 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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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와 공공기관이 드론, 3차원(3D) 프린터 등 신산업 분야에서 중소기업 육성을 명분으로 중견기업과 대기업의 참여를 제한한 결과 외국 기업만 반사이익을 누리는 경우가 늘고 있다. 국내 중소기업 제품 중 일부는 품질 기준을 맞추지 못해 예산이 낭비되는 사례가 적잖게 생겨나고 있다. 신산업의 글로벌 경쟁은 치열해지는데 정부가 국내 대기업과 중견기업을 역차별한 결과 이 분야에서 국가 경쟁력이 저하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31일 관계부처에 따르면 기상청은 최근 조달청에 “중소기업 A업체와 작년에 맺은 9대의 기상 드론 공공입찰 계약을 해지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A업체가 ‘12㎏ 미만, 비행시간 30분 이상’의 성능 기준을 맞추지 못해 계약 후 6개월이 지났는데도 드론을 도입하지 못하고 있어서다. 기상청은 초미세먼지 대응을 위해선 이 같은 성능을 갖추는 게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해당 업체 측은 "기능이 추가되면서 기상청이 요구한 기준을 맞추기 힘들다는 의견을 전달했다"며 "납품 지연과 관련해 감사원에 민원을 제기한 상태"라고 했다.

기상청 관계자는 “재입찰을 통해 가급적 국내 중소기업 가운데 이 같은 최소한의 기준을 충족시킬 수 있는 곳을 선정해 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드론업계 관계자는 “국내 중소기업 가운데선 이를 맞출 만한 곳이 거의 없을 것”이라고 했다. 업계에선 기상청이 중국 DJI 같은 외국 기업 제품을 채택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국내 대기업 중에선 드론을 전문으로 하는 곳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정부는 2007년부터 공공조달 시장에 ‘중소기업 간 경쟁제품 제도’를 시행했다. 대상 제품은 3년마다 지정된다. 지정된 제품은 2010년 196개에서 작년 212개로 늘었다. 드론은 2017년, 3D프린터와 에너지저장장치(ESS) 등은 지난해 지정됐다. 국내 중견기업과 대기업이 관련 제품을 생산하더라도 정부와 공공기관에는 납품이 제한된다.

국내 3D프린터 시장에서 외국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늘어나는 추세다. 중국산 3D프린터 수입액(공공+민간 포함, 플라스틱 재료용)은 2017년 564만1000달러에서 작년 1112만3000달러로 늘었다. 국내 시장 공략이 어렵다 보니 신산업 진출을 검토하다가 포기하는 중견기업과 대기업도 나오고 있다.
中企 보호한다며 '우물안 리그' 만들어…관세청 "국산 드론 불량 많아"
2018년 말 정부가 “중소기업을 보호하겠다”며 에너지저장장치(ESS)를 ‘중소기업 간 경쟁제품’으로 지정하려 하자 한국전기공사협회 등 업계에선 줄지어 반대 의견을 냈다. ESS는 태양광 등에서 생산된 전력을 저장했다가 필요할 때 공급하는 장치다. 업계는 “ESS 시스템은 여러 기술을 융복합해야 해 중소기업 역량으론 한계가 있다”며 “국내 산업 경쟁력 저하와 쇠퇴가 우려된다”고 했다. 전기공사협회에는 1만5000여 개 중소기업이 가입해 있다. 전기공사협회는 대기업 등의 참여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출했다.

하지만 정부는 지난해부터 ESS를 중소기업 간 경쟁제품으로 지정했다. 다만 업계 반대가 심하다는 것을 감안해 일정용량 이하 제품으로 대상을 줄였다.


공공조달 시장 대기업 참여 제한에다 화재 사고까지 잇따르면서 국내 ESS 시장 규모는 지난해 3.7GWh로 전년보다 33.9% 감소했다. 글로벌 ESS 시장이 같은 기간 37.9% 커지는 사이 국내는 역성장했다. 반면 중국의 관련 시장은 무서운 속도로 성장 중이다. 에너지 컨설팅업체 우드맥켄지는 최근 “중국이 2024년까지 아시아태평양 지역 ESS 시장 1위를 차지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다.

ESS뿐만이 아니다. 정보통신산업진흥원에 따르면 국내 3차원(3D)프린터의 국산 비중은 2017년 44.4%에서 2018년 45.8%로 늘었지만, 작년 41.8%로 쪼그라들었다. 특히 기술집약적 산업용 제품 시장에서 미국, 중국 등 외국산 점유율이 2018년 69%에서 작년 75%로 높아졌다.

그사이 무엇이 변했을까. 작년부터 정부는 3D프린터를 중소기업 간 경쟁제품으로 지정하고 보급용(재료압출방식·FDM) 3D프린터 공공조달 시장의 대·중견기업 진출을 절반 이하로 제한했다. 정보통신산업진흥원은 “정부 조달시장이 확대돼 저가형 보급용 3D프린터 제품을 중심으로 국산 소비가 유지되고 있다”며 “반면 산업용은 외산 제품 중심의 시장이 형성돼 있다”고 설명했다.

3D프린팅 장비업계 관계자는 “중소기업이 중견기업이 되면 그 다음해부터 바로 공공조달 시장 참여를 일부 제한받고 3년 뒤면 완전히 퇴출된다”며 “중소기업으로선 기업과 시장을 키울 유인이 없어 ‘우물 안 개구리’를 만든다”고 했다. 국내 3D프린팅 장비 중 약 28%만 수출용으로 판매되고 있다.

그사이 중국은 빠르게 기술추격 중이다. 독일 특허 전문 조사기관 아이플리틱스가 지난해 국가별 3D프린팅 관련 특허출원 비중을 조사한 결과, 미국이 36.4%로 가장 많은 특허를 출원했고, 중국이 15.5%로 그 뒤를 이었다. 중국 업체들은 여기에 값싼 인건비 등을 무기로 보급용 시장에서 대대적인 공세에 나서고 있다.

중소기업 간 경쟁제품 제도는 중견기업에는 또 다른 규제다. 중견기업연합회 관계자는 “공공조달 시장에서의 실적은 수출, 민간시장 진출의 근거”라며 “중견기업에는 신산업 진입장벽인 셈”이라고 토로했다. 실제로 작년 실태조사 결과 중견기업 5%가 중소기업으로의 회귀를 검토했다. 조세혜택(62.2%) 금융지원(15.8%)뿐 아니라 공공조달 진입장벽 등 판로 규제(13.4%) 등을 1순위 이유로 꼽았다.

중소기업 제품만 쓰다 보니 문제도 발생하고 있다. 관세청은 지난해 말 밀수품 적발을 위해 국내 중소기업의 드론 10대를 도입했으나 성능이 떨어져 업무에 전혀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공공조달 시장에 대한 장벽을 통해 중소기업 수명만 연장할 게 아니라 연구개발(R&D) 등을 통해 기술력 향상을 지원해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더불어 세계적으로 경쟁이 치열한 신산업은 중견기업·대기업의 참여를 허용해 전체 시장 규모를 키워야 한다는 조언도 나오고 있다. 허희영 한국항공대 경영학부 교수는 “신산업의 경우 대기업·중견기업의 공공조달 시장 진입 자체를 막기보다 중소기업에 가점을 주는 식으로 기술 경쟁을 유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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