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전증권거래소는 이전처럼 증권당국의 엄격한 심사를 받아야 하는 규제를 대폭 완화해 일정 요건만 충족하면 원칙적으로 상장할 수 있는 준등록제를 도입했다. 상장 후 5일간 가격제한을 없앴고 그 이후로도 제한폭을 20%로 늘렸다. 이 개편 작업이 시장에 먹혀들었다. 선전증시에 창업기업과 자금이 몰렸다. 베이징 중앙정부의 역할이 컸다. 중국 당국은 중국 기술기업들이 미국 시장에 상장하는 걸 막아보기 위해 선전증시를 키웠다고 밝혔다. 상하이증시의 커촹반(科創板·과학혁신판) 성공도 담보가 됐다. 이를 계기로 9조3000억달러(약 9500조원)에 이르는 중국 주식시장 전체가 개혁될 것이라고 내다보는 중국 전문가가 많다. 갈 곳을 찾으려는 중국의 유동성 자금이 선전증시로 몰려드는 게 더욱 눈에 띈다.
선전이 26일 특구 지정 40주년을 맞았다. 가난한 어촌이 1343만 인구의 대도시로 탈바꿈한 건 개혁·개방정책 덕분이었다. 중국에서 공급망을 구축하려는 각국 기업의 노력과 중국 정부의 전략적 의지, 홍콩과의 지리적 인접성 등 여러 요건이 맞은 성과였다. 중국 정부는 선전 모델을 활용해 수백 개의 새 도시를 건설하려 했지만 선전과 같은 경제적 성공을 이룬 도시를 더 이상 조성할 수 없었다.
디바이스와 시장으로 승부했다
선전의 성장세는 그야말로 놀랍다. 이 지역 국내총생산(GDP)은 40년 전에 비해 무려 1만 배 늘었다. 중국 전체 216배와 비교가 안 된다. 홍콩 GDP를 앞선 것도 이미 3년이나 됐다. 인구도 40배 늘었다. 무엇보다 선전은 세계의 공장이라 불릴 만큼 생산기지 역할을 했다. 선전 사람들은 짝퉁 제품도 생산해냈지만 그 과정에서 생산 인프라를 축적했고 소비 유통망도 구축했다. 화웨이가 상징하듯 컴퓨터 하드웨어의 도시로 거듭났다. 미국 실리콘밸리가 반도체로 성장했다면 선전은 스마트폰으로 컸다. 번뜩이는 천재를 기다리는 대신 기존 기술을 융합하고 디바이스를 조립하며 정보기술(IT) 서비스를 시험하는 터전을 제공해왔다.신기술이 계속 등장하는 실리콘밸리와 달리 중국 시장을 노리는 스타트업들의 실험장이다. 부품이 싸고 대량 구매할 수 있는 것도 이 도시의 장점이다. 도시 주민의 평균 연령은 32세다. 50대 이상을 좀처럼 만나기 힘든 곳이기도 하다.
중국 정부의 전략적 육성
선전의 성장에는 중국 정부의 집중 육성전략이 있다. 중국 정부는 40년간 각종 유치전략으로 외국 기업을 선전에 끌어들였다. 지난달에는 선전에 중국 최초로 4만6480개의 5세대(5G) 통신 기지국을 깔고 도시를 스마트화했다. 증시 부양책도 물론 선전을 띄우기 위한 정부의 전략이다.선전시는 개인파산제도를 중국에선 처음으로 지난달 도입했다. 선전시는 “사업에 실패한 기업가들의 경제적 부담을 덜어주고 다시 일어설 기회를 제공하기 위한 것”이라고 도입 배경을 설명했다. 중국 정부는 광둥성 남부와 마카오, 홍콩으로 구성된 베이 지역에서 선전의 주도적인 역할을 강화할 것이라고 강조한다.
홍콩과의 관계에서 변혁
선전이 변화하는 모습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홍콩과의 관계다. 홍콩에서 기차로 15분 거리에 선전이 있다. 지난 40년 동안 두 도시의 역할은 상호 보완적이었다. 홍콩은 선전 없이 살아남을 수 없었고 선전은 홍콩 없이 살아남을 수 없었다. 1만2000개의 홍콩 기업은 선전에 사업소를 두고 있다. 하지만 홍콩에서 홍콩보안법이 제정되고 정치 위기를 맞으면서 선전이 홍콩의 지위를 대체할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무엇보다 중국인들의 관심은 선전 부동산 가격 급등에서 엿보인다. 선전 부동산 가격은 홍콩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세계 5위에 이른다. 중국의 중산층 이상이 선전에 부동산을 소유하기 위해 몰려들면서 선전 부동산 가격은 급작스럽게 상승하고 있다. 구축 주거용 건물 가격은 2015년부터 78% 상승했다. 올해도 10% 정도 가격이 올랐다. 중국 대도시에서 가장 높은 상승률이다. 일부 전문가는 “중국 정부가 홍콩 대신 선전에 우대정책을 계속 펼 것이며 국제비즈니스센터로서 홍콩의 지위는 언젠가 선전으로 대체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기도 한다.
미·중 갈등과 신제품 개발이 변수
하지만 선전도 지금 고민거리가 한둘이 아니다. 제조업을 축으로 해 실리콘밸리에 필적할 만큼 혁신 제품이 늘지 않는다. 하드웨어 산업은 갖춰져 있지만 소프트웨어 산업은 열세다. 일부 소프트웨어 기업이 있긴 하지만 미국의 구글과 마이크로소프트처럼 거대 소프트웨어 기업이 나오지 않는다. 사물인터넷(IoT)도 마찬가지다. 여전히 선도기업을 추격하는 데는 강하지만 파괴적 혁신엔 도달하지 못한다. 소프트웨어 개발 문화가 형성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더구나 미·중 무역전쟁으로 선전은 직접 타격을 받고 있다. 상반기 0.1% 성장에 그쳤다. 폴더블 스마트폰의 판매 부진이 가장 큰 타격이다. 오히려 중국의 혁신기업들은 미국 증시인 나스닥을 찾는다. 나스닥에 등록돼 있는 중국 기업만 200개가 넘는다. 전기차 업체 샤오펑모터스와 니오, 리샹 등도 상장을 준비 중이다. 자금을 모으기 쉽고 기업 활동도 중국에 비해 훨씬 자유롭기 때문이다. 선전 전문가들은 결국 중국 정부가 선전을 얼마만큼 자유로운 도시로 조성하는지가 선전을 혁신하는 관건이라고 설명했다.
오춘호 선임기자 ohch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