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은 상상의 끝을 상상하게 만든다.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인셉션’은 누구나 겪지만 매우 개인적 영역에 제한된 꿈체험을 하나의 장면으로 보편화했다. 꿈의 세계를 꿈처럼 묘사해낸 것이다. ‘인터스텔라’는 상대성 이론이라는 현학적 세계를 사랑의 언어로 풀어냈다. 시공간을 넘어 딸을 구할 수 있는 원동력, 그게 바로 사랑이다.
코로나19가 세계를 휩쓴 가운데, 크리스토퍼 놀런이 새 영화를 만들었다. ‘테넷’이라는 작품인데, 이 영화 역시 순도 높은 상상 위에 건축돼 있다. ‘테넷’은 엔트로피 이론에서 출발한다. ‘테넷’의 세상은 벽에 박힌 총알이 다시 총으로 와서 꽂히는 세상이다. 시간적 흐름이 뒤집히는 역전, 그것이 눈앞에서 실재처럼 재현되는 경험, 필름을 뒤로 빨리감기 하듯 시공간 속 모든 움직임이 거꾸로 이뤄지는 역설, 크리스토퍼 놀런은 그것을 인버전(inversion)이라 명하고 바로 그 상상력을 진짜처럼 보여준다.
중요한 것은 이런 상상력이 단순한 몽상이 아니라 세상의 이치를 밝히고자 하는 탐구력에서 비롯됐다는 사실이다. 크리스토퍼 놀런은 언제부터인가 캘리포니아공대 교수들에게서 엄격한 물리학 자문을 받기 시작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물리학이란 고대 철학자들의 사유 대상이었다. 고대 철학자들은 물리학자이자 종교학자이며 예술가였는데, 그들이 사유하고자 했던 것은 바로 우리의 삶과 그것의 바탕인 우주 원리였다.
성경엔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라는 구절이 있다. 말씀을 뜻하는 로고스(logos)는 철학에서는 이성을 상징한다. 로고스의 반대편에는 주로 에토스(ethos)가 놓이는데, 고통을 뜻하는 파토스(pathos)가 놓이기도 한다. 에토스가 윤리의 영역이라면 파토스는 감정의 영역이다. 파토스 덕분에 우리는 타인의 고통을 연민하고 그것에 공감할 수 있다. 우리의 삶은 이 영역들 사이의 간섭과 조화로 완전해진다.
BTS는 음악을 다루는 뮤지션들이지만 다양한 인문학적 배경을 늘 매설해둔다. 인문학적 지식 위에 음악적 상상력을 보태는 것이다. 상상은 사물이 아니라 사물 너머를 바라볼 때 가능해지는 인지 영역이라고 할 수 있다.
엔트로피는 무질서도를 의미한다. 삶은 무질서하게 시작해 완전한 질서에서 멈춘다. 그건 바로 죽음이다. 상상력에는 적당한 무질서가 도움이 된다. 어릴 때, 젊을 때, 삶이 훨씬 무질서하지만 에너지가 많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상상력은 우리 마음 어딘가의 그 무질서함을 필요로 한다. 그 힘은 세상을 끝없이 궁금해하는 것이기도 하다. 우주를 궁금해하고, 삶을 궁금해하는 것, 결국, 상상력은 그 호기심의 결실이다. 상상력이 없는 삶이 무미건조할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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