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강점기 독립운동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당장 일본에 피해를 주는 무장투쟁이고, 다른 하나는 장기적으로 일본에 맞서기 위해 교육 등으로 실력을 기르는 방식이었다. 남자현 선생(사진)은 이 두 방법을 모두 해내다 순국한 여성 독립운동가다.
그는 1872년 12월 경북 안동에서 태어났다. 19세에 결혼했지만 1896년 일본군에 의해 의병활동을 하던 남편을 잃었다. 3대 독자를 어렵게 키우던 그는 3·1운동 직후 아들과 함께 만주로 넘어가 무장독립운동 단체인 서로군정서에서 활동했다. 비록 실패했지만 제3대 조선 총독인 사이토 마코토 암살을 시도하며 무장투쟁에 나선 한편, 만주에 12개의 교회와 10여 개의 여자교육회를 세워 여성 계몽운동에도 힘썼다.
1932년 국제연맹 조사단이 일제의 만주침략 진상을 조사하기 위해 중국에 파견됐다. 이때 남자현 선생은 일제의 만행을 알리기 위해 자신의 왼손 넷째 손가락을 잘라 혈서를 써 손가락과 함께 조사단에 전달했다. 1933년엔 주만주 일본대사 무토 노부요시를 암살하려다 붙잡혀 투옥됐다. 6개월간 혹독한 고문과 단식투쟁으로 몸이 상한 그는 1933년 8월 22일 숨졌다. 세상을 떠나며 그는 말했다. “독립은 정신으로 이루어지느니라.”
정의진 기자 justji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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