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14일 신임 외교부 제1차관에 최종건 청와대 국가안보실 평화기획비서관을 발탁했다. '일본통' 조세영 외교부 제1차관의 뒤를 이어 외교부의 양자외교의 총책을 맡게 된 만큼 문재인 정부의 대일(對日) 외교의 향배에 관심이 모인다.
최 신임 차관이 걸어온 길에선 한·일 관계와 관련된 뚜렷한 발자국을 찾아보기 어렵다. 미국 로체스터대 정치학과를 졸업한 그는 외교안보와 관련된 전략과 이론 분야를 전공으로 연세대에서 정치학 석사, 미국 오하이오주립대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부교수 시절인 2017년 문재인 정부 출범 후에는 청와대 국가안보실 평화군비통제비서관·평화기획비서관을 역임하며 주로 대북정책을 담당했다. 2018년 9월 평양공동선언과 9·19 군사합의 작성을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 신임 차관의 주변 인사들의 증언을 종합하면 그는 평소 일본에 대해 강경한 입장을 내비쳐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문정인 교수 라인'이자 청와대 내부에서도 민족주의 성향이 강한 '자주파'로 분류됐던 만큼 한·일관계 악화는 일본의 역사 인식에 기인하는 만큼 지금 시국에서 한국이 양보하면 안 된다는 인식을 갖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최 신임 차관의 '일본관'은 청와대 근무 시절 당시의 SNS 활동에서 여러 차례 드러난다. 지난해 8월 사토 마사히사 외무성 부대신이 일본의 한 방송 프로그램에서 일본의 수출규제를 비판한 문 대통령을 향해 "'도둑이 뻔뻔하게 군다'(적반하장)는 품위 없는 말을 쓰는 것은 정상적인 것은 아니다. 무례하다"고 발언한 것을 두고 그는 “‘우리는 다시는 지지 않을 것’이라는 문 대통령의 한마디는 우리의 꿈과 희망을 이루기 위한 역사 선언”이라며 “고단한 반도의 운명을 바꾸는 데 벽돌 하나를 얹고, 다시는 어두운 시대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2019년 여름은 2017년 가을의 상황만큼 엄중하다”며 북한의 도발이 계속되던 시기와 최근 한·일 갈등 상황을 비교하기도 했다.
같은 달 13일에는 폴란드의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방문했던 추억을 공유하면서 "난 동북아와 유럽의 근본적인 차이는 바로 유럽에는 독일이 있고 동북아에는 '독일'이 없다는 것을 종종 이야기 한다. 이들의 반성과 기억 그리고 기록은 화해를 가능하게 한다"며 "나는 일본을 잘 모른다. 그렇다고 독일을 잘 안다고 할 수 없다. 그러나 일본에서 '독일스러운' 반성과 기억 그리고 기록을 본 경험이 없다. 우리에겐 독일이 없다는 것이 또 다른 비극의 서막이 아니길 바란다. 이것이 내 나름의 광복절 70주년 기록이다"고 썼던 글을 다시 게재했다.
이틀 뒤 광복절에도 일본과 관련된 글을 게재했다. 그는 문 대통령이 "일본 역시 대화를 추진하고 있는 현실을 직시하기 바랍니다. 이념에 사로잡힌 외톨이로 남지 않길 바랍니다"고 언급한 광복절 74주년 기념사를 발췌해 공유했다. 그러면서 '#책임있는경제강국', '#외톨이는외로워', '#현실을직시바래요'라는 해시태그를 남기기도 했다.
정부가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을 종료하기로 결정한 22일에는 관련 기사를 게재하면서 "국가 이익은 명분 실리는 물론 국민 자존감을 지켜주는 것도 중요"라고 강조했다. 그는 청와대 내에서 지소미아를 종료해야 한다고 가장 적극적으로 주장했던 인물 중 하나로 알려졌다. 29일에도 '경제 보복 합리화, 반성 없는 역사 왜곡, 일본은 정직해야 합니다'라는 문 대통령의 임시 국무회의 발언을 공유하며 '#Japan_must_be_honest'라고 해시태그를 붙였다.
같은해 11월에는 지소미아 종료 철회 결정을 두고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일본은 아무것도 양보하지 않았다'고 언급했다는 일본 언론의 보도 내용을 공유하며 '#try_me'라는 해시태그와 함께 "일본 정부 지도자로서 과연 양심 갖고 할 수 있는 말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고 썼다.
외교가에서는 최 신임 차관이 취임하면 외교부가 일본에 더 강경하게 대응할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된다. 외교부 내 대표적인 '재팬 스쿨'로서 일본어에 능통하고 일본에 대한 이해가 깊은 조 차관의 부재도 정부의 대일외교에 적잖은 변화를 가져올 것이란 전망이다. '강 대 강' 대립을 이어가는 청와대와 수상 관저 사이에서 중재 역할을 해왔던 한·일 외교당국 간 관계마저 얼어붙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임락근 기자 rkl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