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최대 항공사인 전일본공수(ANA)가 회계상 자본으로 인정받는 신종자본증권(하이브리드채)을 최대 5000억엔(약 5조5441억원) 규모로 발행할 계획이다. 차입금을 늘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충격을 버텨온 일본 항공업계에서 자기자본을 확충하려는 움직임은 처음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ANA가 일본 정책투자은행 및 미쓰비시UFJ, 미쓰이스미토모, 미즈호 등 3대 메가뱅크와 신종자본증권(하이브리드채) 발행을 위한 협의를 시작했다고 14일 보도했다. 조달금액은 4000억~5000억엔으로 예상된다.
부채와 자본의 중간 단계의 자금조달 수단인 신종자본증권은 회계상 자본으로 인정된다. 신종자본증권으로 자본을 늘리면 신용등급의 하락을 막고, 은행으로부터 추가 대출을 받기도 쉬워진다. 정책금융기관을 통해 정부 돈을 받더라도 경영에 관여할 수 있는 의결권이 없기 때문에 기업 측이 선호한다.
ANA가 자본 증액에 나섰다는 건 코로나19의 장기화로 여객 수요가 조기에 회복될 가능성을 낮게 본다는 의미다. 코로나19 확산 이후 ANA는 은행 신용한도(크레디트라인·기업의 마이너스 통장) 보강 등을 통해 6월까지 1조엔의 자금을 확보했다. 항공기 리스 요금과 차입금 이자 지급 등으로 월 평균 600억엔의 자금이 빠져나가는 ANA가 확보한 자금으로 버틸 수 있는 시간은 약 1년 정도다.
여객수요가 당분간 회복되지 않으면 재무상황이 악화해 신용등급이 하락하고, 회사채 발행 및 은행 차입 비용이 늘어날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 때문에 재무상황이 악화하기 전에 미리 자본을 비축해 두자는 의도에서 신종자본증권 발행에 나선 것으로 분석된다. ANA는 2분기 동안 분기 사상 최악인 1088억엔의 적자를 냈다.
코로나19 충격에 대비해 주거래은행으로부터 5000억엔을 확보한 일본항공(JAL)도 신종자본증권 발행의 초읽기에 들어갔다. 아카사카 유지 JAL 사장은 7월초 "5000억엔으로 반년에서 1년은 버틸 수 있다"면서도 "5000억엔으로도 부족하면 더 이상 채무를 늘리기는 어렵기 때문에 신종자본증권 발행 등을 고려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다만 정부 자금이 흘러 들어가기 시작하면 장기적으로 정부가 경영에 간섭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된다. 지난 5월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일본 정부 관계자를 인용해 올 가을 이후에도 코로나19를 수습하지 못하면 일본 정부가 미국의 불량자산구제프로그램(TARP)과 비슷한 기업의 자본확충 수단을 검토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TARP는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미국 정부가 금융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도입한 제도다. 정부가 은행의 우선주를 매입해 자본공급을 늘리는 대신 은행이 우선주를 상환하지 못하면 보통주로 전환해 경영개선을 촉구할 수 있는 제도다.
ANA와 JAL도 정부의 경영 간섭을 우려해 정부 자금 조달을 극도로 조심스러워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본 정부 일각과 금융시장에서 두 항공사의 국제선 부문을 통합해 경영을 합리화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나오는 탓이다. 두 항공사의 국제선 노선을 합쳐도 점유율이 25%에 불과해 독점금지법에 저촉되지 않는다.
도쿄=정영효 특파원 hug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