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서 대우건설이 분양한 '대치 푸르지오 써밋'이 올해 서울에서 분양한 아파트 중 가장 높은 평균 청약경쟁률을 기록했습니다. 106가구 모집에 1만7820명이 몰려 168.1대 1의 기록을 세운 겁니다. 특히 분양가 20억원에 공급된 전용 101㎡A형은 경쟁률은 848.0대 1(1가구 분양)에 달했습니다.
이는 취득·보유·거래세 인상 등 정부가 부동산 세금을 확대하고 중도금과 전세 등 은행 대출을 틀어막아도 여전히 강남에 살려는 수요가 많다는 걸 알려주는 신호입니다. 물론 '대치 푸르지오 써밋'은 또 다른 규제(주택도시보증공사의 분양가 통제)로 인해 분양가가 주변 시세보다 25% 정도 낮게 나와 수요가 몰린 측면도 있지요.
정부·여당의 말대로라면 이날 청약한 1만7820명은 모두 불로소득을 노린 투기세력일 수 밖에 없습니다.
이날 공급된 주택은 면적이 가장 작은 전용 51A타입 분양가가 10억 3110만원에 달하는 등 모두 분양가가 10억원이 넘습니다. 당첨되는 순간 10억원이 넘는 종합부동산세 대상 초호화 주택에 살게되는 겁니다.
하지만 정말 이들이 투기꾼입니까?
이날 청약한 이들은 모두 1순위 자격 뿐 아니라 가점제 당첨권인 청약 가점 최소 50점 후반~60점대를 갖추기 위해 대부분 10년 이상 무주택으로 견디며 청약통장을 보유해온 사람들입니다. 통상 50점 후반대가 되려면 무주택 11년 미만(22점), 부양가족수 3명(20점), 주택청약종합저축 가입기간 15년 이상(17점)은 되어야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수요가 많을 땐 공급을 늘리는 게 시장경제에서는 정상적입니다. 재화의 가격이 오른다는 얘기는 수요가 많거나, 공급이 모자라서 생기는 현상이니까요.
정부와 여당에선 서울 강남 지역에 공급을 늘릴 만한 곳이 충분하지 않다고 합니다. 하지만 압구정동 현대아파트를 비롯해 대치동 은마, 미도아파트와 잠실 올림픽선수촌 등 70~80년대에 지은 용적률 100%대 아파트 단지가 수두룩합니다. 이들의 용적률을 높여줘 재건축 재개발을 순차적으로 지원할 경우 공급량은 지속적으로 증가할 겁니다. (재건축 이익 환수율도 개발 진행의 중요한 관건이겠지요.)
미국 뉴욕, 일본 도쿄 등 각국의 주요 도시 도심에는 용적률 600%를 넘는 주거단지도 많습니다.
하지만 '대치 푸르지오 써밋' 1순위 청약이 진행되던 지난 10일 문재인 대통령은 부동산 시장을 감시하는 기구를 검토하기로 했다고 밝혔습니다. 시장경제의 수요공급 원칙보다는 규제와 감독으로 현 상황을 해결하겠다는 얘기입니다.
금융감독원과 같은 수준의 '부동산감독원' 설립 얘기가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금감원은 임직원 2100여명에 지난해 인건비 2184억원 등 예산 3629억원을 쓴 조직입니다. 부동산감독원이 비슷한 규모로 설립될 경우 그 예산은 또 부동산 거래나 보유자에게 부담시킬 수 있습니다. 지금 금감원 예산을 금융사들이 감독수수료 형태로 내는 것처럼 말이죠. 이는 또 다시 아파트 매매가나 세입자에게 전가될 수 있습니다. 올라간 취득·보유·거래세처럼 말이죠.
김현석 논설위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