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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잡 쓴 바이크족, 터번 두른 랩퍼…'힙'한 그들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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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잡을 쓴 여성들이 좁은 골목길에서 오토바이 위에 앉아 있다. 레오파드나 카무플라주(보호 및위장용 얼룩무늬)가 프린트된 천으로 만든 카프탄 드레스를 입은 여성들은 여느 무슬림 여성들처럼 비밀스럽고 수동적이지 않다. 베일로 얼굴을 가렸지만 정면을 응시하는 눈빛이 거리낌없다. 작가는 패션 화보나 힙합, 무술 공연을 찍는 것처럼 아래에서 위로 앵글을 잡아 인물들을 더욱 당당하게 만들었다.

서울 삼청동 바라캇 컨템포러리에서 전시 중인 하산 하자즈(59)의 국내 첫 개인전 ‘다가올 것들에 대한 취향’에 전시된 사진작품 ‘헤나 엔젤스(Henna Angeles)’다. 하자즈는 모로코와 영국을 오가며 활동 중인 작가로, 이질적인 문화 간의 대립과 편견을 넘어 다양한 문화적 취향을 공유하고 소통할 것을 강조한다. 이번 전시에는 이런 메시지를 강렬한 색채와 리드미컬한 구도로 담아낸 사진 연작, 영상, 설치 등 22점을 내놓았다.


하자즈에게 문화 간의 경계 허물기는 태생적 유산이자 과제였다. 모로코 북부 대서양 연안의 라라슈에서 태어난 그는 10대에 영국으로 이주했다. 1970~80년대 영국에서 하자즈는 2세대 이민자로서 정체성의 혼란과 언어 장벽, 인종 차별, 경제적 소외 등의 문제를 겪어야 했다. 당시 제3세계 출신 젊은 예술가들은 대안적인 생활양식, 패션, 예술 등을 모색하면서 자신들만의 문화를 형성하기 시작했다. 정규 교육을 받지 않았던 하자즈는 스트리트 음악과 패션, 인테리어 디자인 등을 자연스럽게 접하면서 주류문화에 대한 반항심과 함께 창조적 정신을 키웠다.

스트리트 패션 브랜드를 만들고 힙합, 레게 등을 즐길 수 있는 나이트클럽을 운영하며 흑인 대안문화를 이끌던 그가 사진 작업을 본격화한 것은 1980년대 후반 모로코를 자주 여행하면서였다. 서구적 시각에서 ‘이국적인 것’으로 다뤄지고 있던 북아프리카 문화에 대한 편견을 허물기 위해 그는 아프리카인을 중심에 세운 사진, 영상, 퍼포먼스 작업을 시작했다.

모로코는 유럽과 아프리카를 잇는 접점이자 두 문화의 공존지대다. 하자즈는 유럽과 아프리카, 고급문화와 하위문화, 예술과 상업을 넘나들고 혼합하며 차별과 대립을 넘어서는 자신만의 하이브리드 미학을 창조해냈다. 모로코의 시장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루이뷔통 등 명품 브랜드의 짝퉁 제품을 수집해 작품 속의 어엿한 오브제로 등장시킨다. 심지어 통조림과 장난감, 타이어 등 모로코산 제품을 활용한 아이디어도 기발하다. 마돈나, 빌리 아일리시 등 톱스타들과도 작업했던 이유다.

그의 작품들은 강렬하고 화려한 색채와 패턴, 유쾌하고 유머러스한 분위기 때문에 팝아트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결코 가볍지 않은 주제의식이 담겨 있다. 이번 전시에는 ‘마이 록스타’ ‘케시 엔젤스’ ‘다카 마라키아’ ‘레그’ 등 그의 대표 사진 연작들과 영상 작품 ‘마이 록스타 실험영상 Ⅱ’를 선보이고 있다.


‘마이 록스타’ 연작은 하자즈가 마라케시와 런던, 파리, 두바이 등지의 거리에서 팝업 사진 스튜디오를 열어 만난 사람들을 찍은 기록사진이다. 여기에는 재즈가수 호세 제임스 등 유명 연예인부터 언더그라운드 음악가, 헤나 타투 예술가, 패션 디자이너 힙합댄서, 무술인, 요리사 등 다양한 사람들이 등장한다.

그중 2018년 작품 ‘게토 가스트로 XL’은 뉴욕 브롱크스에서 활동하는 요리사, 디자이너, 예술가 집단을 담은 작품으로, 명품 브랜드 신발, 선글라스와 두건, 방탄조끼 등으로 차려입은 흑인 남성들이 주먹을 쥐고 있다. 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는 ‘Black Lives Matter’의 의미를 담고 있다. 같은 연작의 ‘밸리댄서’에는 눈만 내놓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꽁꽁 싸맨 인물이 등장한다. 화려한 물방울 무늬로 감춘 몸매가 여성인가 싶지만 실제 주인공은 남성이다.


하자즈 작품의 또다른 특징은 사진작품을 둘러싼 틀(프레임)이다. 그는 액자의 가장자리에 수납 공간을 만들어 각종 음료·통조림 캔과 병, 장난감, 재활용 타이어, 성냥갑 등 모로코에서 소비되는 상품들을 빼곡히 채웠다. 이는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모로코의 전통적인 모자이크 패턴과 타일을 하자즈의 관점으로 재해석한 것이다. 여성 모델을 찍은 작품에는 영계(chicks)라는 은어를 연상케 하는 닭고기 제품 캔을 사용하고, 우람한 남성 모델에게는 소고기 통조림 캔을 사용하는 식이다.

갤러리 2층에서는 사진연작에 등장하는 9명의 예술가가 각각 모니터에서 춤과 노래, 연주를 하는 영상작품 `마이 록스타 실험영상 Ⅱ‘를 상영한다. 그 안쪽에는 하자즈가 모로코와 영국에서 운영하는 부티크도 재현해 놓았다.

전시장은 그의 작품 못지 않게 현란한 색채와 독특한 문양들로 가득하다. 작가의 뜻에 따라 벽과 바닥 전체를 타일을 이어붙인 것처럼 같은 패턴과 아랍어 문구가 반복되는 벽지로 장식했다. 1층의 벽지 문양은 모로코의 교통 안내판을 비튼 것으로, ’정지‘를 의미하는 단어의 철자를 살짝 바꿔 ’깨어나라!‘는 뜻으로 바꿨다. 전시는 9월 27일까지.

서화동 선임기자 firebo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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