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월가에선 증시 전망을 놓고 전문가마다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의 영향이라지만 증시가 워낙 냉·온탕을 오가서다. 투자회사 스톤인베스트먼트의 빌 스톤 최고투자책임자(CIO)는 6일(현지시간) CNBC와의 인터뷰에서 “증시가 실물 경제를 앞서고 있지만 떨어져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고 말했다. 그만큼 미래 예측이 어렵다는 얘기다.
"유동성 효과 지속" 낙관론
증시 낙관론의 배경엔 미국 중앙은행(Fed)의 대규모 양적완화 정책이 자리잡고 있다. Fed가 찍어내고 있는 달러가 증시로 계속 흘러가고 있다는 논리다.앤드루 슬리먼 모건스탠리 선임 포트폴리오 매니저는 최근 자사 홈페이지에 띄운 보고서에서 “Fed가 경기 하강 위험이 높다고 강조하고 있는데 이것이야말로 최고의 투자 시그널”이라며 “경기 침체일수록 모든 지원책을 쏟아낼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Fed에 맞서지 말라는 증시 격언을 되새기라”고 조언했다.
스위스 투자은행인 UBS자산관리의 카트리나 시모네티 선임 포트폴리오 매니저도 “미국 정부와 Fed가 시장을 살리기 위해 전례없는 부양책을 내놓고 있다”며 “증시에선 악재가 나오더라도 ‘Fed가 알아서 처리해줄 것’이란 믿음이 팽배하다”고 설명했다.
최악의 시기는 지났으며 강세장은 시작 단계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증시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은 이제 ‘과거 얘기’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켄 버먼 고릴라트레이드 전략가는 “미국 전역에서 코로나19의 신규 감염자도 줄기 시작했다”며 “중소기업과 전염병 타격을 가장 많이 받은 기업들에까지 투자 자금이 유입된다면 본격적인 강세장이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페이스북 애플 등 대형 기술주가 견인하는 장세가 과거 ‘닷컴 거품’ 때와는 질적으로 다르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탄탄한 실적이 받쳐주고 있다는 것이다. 라이언 데트릭 LPL파이낸셜 수석투자전략가는 6일(현지시간) 마켓워치와의 인터뷰에서 “소수의 기술주가 시장을 이끌고 있는 건 맞지만 실제 실적을 살펴보면 나스닥이 왜 최고점을 찍었는지 확인할 수 있다”며 “지금과 같은 급등장은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개선된 경제 지표도 투자자에게 안도감을 주는 요인이다. 미 노동부에 따르면 지난주 실업수당 청구자 수는 전주 대비 24만9000명 감소한 118만6000명(계절 조정치)으로 집계됐다. 월스트리트의 당초 예상치(142만3000명)보다 훨씬 적은 숫자다. 코로나19 사태가 본격화한 올 3월 중순 이후 최저치이기도 하다.
코로나19 백신이 조기에 나올 가능성도 제기됐다. 백신이 출시되면 모든 경제 활동이 정상화될 수 있다. 골드만삭스는 “시장은 백신이 조기에 개발될 가능성을 과소평가하고 있다”며 미국에서 오는 11월 백신이 배포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미 정부의 추가 부양책도 가시화하고 있다. 미치 매코널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는 이날 “정확하게 언제 민주당과 합의할지 얘기할 수 없지만 가까운 시일 내 추가 부양책이 타결될 것”이라고 했다. 이번에 내놓을 경기 부양책은 최소 1조달러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나치게 고평가" 비관론
미국 증시 전망에 대한 비관론도 만만치 않다. 나스닥을 중심으로 워낙 빨리 급등한 탓이다. 2000년 닷컴 거품이 한꺼번에 꺼졌을 때처럼 ‘자유 낙하(free fall)’를 경계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나스닥지수는 2000년 3월 5000선을 처음 돌파했으나 2002년 10월엔 5분의 1인 1100까지 밀렸다.증시 비관론의 대표적인 인사는 ‘닥터둠(Dr. Doom)’이란 별명이 붙은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다. 그는 최근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해가 끝나기 전에 세계 경제를 뒤흔들 ‘화이트 스완(하얀 백조)’이 하나 또는 그 이상 등장해도 놀라지 말라”고 경고했다. 화이트 스완은 역사적으로 되풀이되는 위기에도 뚜렷한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하는 상황을 의미한다.
그는 “세계 경제가 여전히 취약하기 때문에 ‘V자형’ 반등이 나타나더라도 1~2분기밖에 지속하지 않을 것”이라며 “올해 가을이나 겨울께 코로나19의 2차 유행이 시작되면 경제가 ‘W자형’ 더블딥(이중침체)을 겪을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심하면 2025년까지 ‘L자형’의 심각한 대공황을 배제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대형 기술주 중심의 유동성 장세인 탓에 외부 충격에 약할 것이란 지적도 나왔다. 팀 헤이에스 네드데이비스리서치 수석투자전략가는 CNBC와의 인터뷰에서 “미 증시가 지나치게 고평가돼 있어 외부 충격을 방어하기 어렵다”며 “소수의 기술 기업이 주도하는 분위기가 바뀌지 않는 한 지금과 같은 강세장이 지속될 수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드라이든 펜스 미 펜스자산운용 최고투자책임자(CIO)도 “증시가 두 갈래로 양분됐다”며 “소수의 분야만 잘나가고, 나머지 다수는 뒤처져 있는 형국”이라고 지적했다.
미 정부와 중앙은행(Fed)이 쏟아내고 있는 부양책 약발이 점차 줄고 있다는 관측도 있다. 찰리 리플리 알리안츠 선임투자전략가는 “올 상반기의 경기 부양책 약발은 거의 다한 상태인데 시장은 추가 부양책이 이미 나온 것처럼 반응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놈 콘리 JAG캐피털 CIO는 “향후 1~2주일 안에 경기 부양책이 현실화하지 않을 경우 미국 내 소비가 급감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래리 핑크 블랙록 최고경영자(CEO)는 “미국 경제가 코로나19 타격을 회복하는 데 시장 예상보다 더 오랜 시간이 걸릴 수 있다”며 “만약 (코로나19가 확산했던) 3월에 지금 수준의 감염자들이 나왔다면 증시 충격이 컸을 것”이라고 말했다.
시장에선 미·중 갈등이 지속되는 점도 작지 않은 위험 요인으로 꼽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오는 11월 대선을 앞두고 중국에 대한 압박을 강화하고 있다.
뉴욕=조재길 특파원 ro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