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의 23번째 ‘집값 대책’이 나왔지만 시장 반응은 신통찮다. 수요억제 일변도에서 공급확대로 방향을 선회했지만, 과도한 규제의 틀을 유지한 채 재개발·재건축에 따른 개발이익을 대부분 환수하겠다니 정부의 공급 의지가 의심받는 것이다. 공급 실효성에 대한 시장의 의구심이 바로 드러나자 정부의 초조감도 커지고, 당국자들 말 또한 거칠어져 ‘정책의 위험선’을 넘나든다. 전형적인 행정 불신의 악순환에 빠질까 걱정이다.
‘8·4 공급대책’을 내놓던 당일,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은 ‘더 강한 대책’을 예고했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토지거래허가제 대폭 확대 의지를 드러냈고, 김태년 민주당 원내대표도 “모든 정책수단을 동원하고, 필요하면 더 강력한 입법에 나서겠다”고 엄포를 놨다. 요컨대 얼마든지 ‘더 강한 대책’을 휘두르겠다는 것이다.
홍 부총리는 어제도 ‘부동산시장 점검 관계장관회의’를 열어 9억원 이상 주택매매에 대해 자금 출처 등 세무 및 금융조사에 나서겠다고 했다. 무수한 논란에도 불구하고 취득세·보유세·양도세를 일거에 대폭 인상해 세제의 신뢰를 흔들어놓고, 국세청 세무조사권까지 동원해 구시대적 ‘별건 조사’라도 하겠다는 것인가. 국가 유지의 기본 중의 기본인 세제·세정을 이렇게 마구 휘두르라고 5년 임기의 정부에 위임했던가.
정부가 주택시장, 실질적으로는 자발적 매수·매도 희망자들을 대상으로 왜 이렇게까지 일전불사의 전쟁을 벌이려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실수요자 등 시장의 눈높이와 어긋나 즉각 보완해야 할 것도 한두 가지가 아니다. 공공 임대주택 확대 문제로 빚어진 서울시·과천시·마포구·노원구 등 지자체들과의 이견부터 그렇다. 최고의 명품도시를 만들겠다던 3기 신도시도 대책 없이 용적률만 대폭 높이면 또 다른 서울의 베드타운 수준을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다. 18곳에 달하는 서울시내 신규 택지는 실현가능성이 의심된다. 설령 된다 해도 서울의 도시 경쟁력은 고려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23번째 대책을 내놓자마자 24번째를 예고한 것부터가 정상이 아니다. 그러면서 계속 초강경 일변도로 가려 한다. 급기야 국회에서 여권 의원이 “부동산가격이 올라도 우리는 문제없다. 세금만 열심히 내달라”는 연설까지 했고, 여당 의원들은 박수 치며 환호했다. 이 나라의 주인은 누구이며, 납세자는 지금 어떤 존재인가. 위헌적 강성 정책은 더 큰 혼란과 부작용을 초래할 것이다. 책임 있는 정부·여당이면 눈을 돌려 나라 밖도 보고, 지금 퍼붓는 일련의 정책들이 수년 뒤 어떤 후유증을 남길지도 면밀히 살피는 신중함이 있어야 한다. 주택을 ‘경제’가 아니라 ‘정치’로 보면 주거복지도 집값안정도 요원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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