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한 칸 (겨우) 남았다.’ 퇴직 준비를 하는 50대부터 이미 은퇴한 6070세대가 흔히 하는 말 가운데 하나다. 30년 직장생활, 경제활동에도 이렇다 할 노후대책이 없다는 푸념과 자탄이 깔린 말이다. 젊어서부터 허리띠 죄며 달려왔지만 자식 교육시키고 만만찮은 생활비 대면서 대인관계도 최소한으로 신경쓰다 보면 대개 그렇게 된다.
월급쟁이에게 ‘남은 집 한 칸’은 치열하게 살면서 악착같이 모은 저축의 합계요, ‘전 생애 적금통장’이다. 일에 묻혔던 ‘내 청춘’의 보상이기도 하다. 조금 더 값나가는 도시주택이라면 성실한 ‘삶의 훈장’이라고 한들 과할 것도 없다. 하지만 100세 시대. 퇴직 후 30~40년을 버티려면 ‘겨우 남은 한 채’를 처분해도 부족할 것이다. 요즘 같은 비혼(非婚)시대에 결혼하겠다는 효자효녀에게 선뜻 팔아서 도와주기도 어려운 노후 마지노선이다.
양극화 시대에 집도 양극화되면서 사회적 문제로 떠올랐다. 이 바람에 주택의 ‘공공재’ 속성도 급부상하고 있다. 원래는 ‘사유재(사유재산)’를 말할 때 맨 먼저 꼽아온 게 집이다. ‘내 집’은 헌법상 거주이전의 자유(14조), 신체의 자유(12조), 사유재산권(23조)의 출발점이자 이런 천부 권리의 보장을 담보하는 방편이다. 유감스럽게도 이런 전통적 분류에 따른 사유재·공공재 개념을 엄격하게 적용하기에는 집을 둘러싼 우리 사회의 논쟁과 논변, 갈등이 너무 달아 있다.
정부·여당의 거친 행보를 보면 집까지 경찰·소방·공원·도로 같은 진짜 공공재에 포함시킬 기세다. 공공재의 특징이 시장의 가격원리가 적용될 수 없다는 것과 대가 지불 없이도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이니, 최근 주택정책은 그런 점에서도 공공재 쪽으로 확실히 경도돼 있다.
주택의 공공재 개념은 공산국가는 물론 일부 유럽 국가들처럼 사회주의 전통이 강한 곳에서 앞세워 왔다. 정부주도의 임대·서민주택 보급, ‘소셜 믹스’, 공공분양 등의 아파트 보급사(史)를 보면 한국에서도 공공재 개념은 은연중 폭넓게 퍼져 있다. 국제 추세로는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이 주택의 사용과 매매 처분권까지 개인과 시장에 맡기면서 사유재로 굳혀온 게 주목된다. 수요·공급은 시장에 맡기고 오르든 내리든 정부는 집값에 거의 관여 않는 미국은 일관성이 신뢰감으로 이어진다.
정책 입안자들 입에서 ‘공공재’ ‘주거 공개념’ ‘토지 공개념’ 같은 구호가 잦아지고 있다. 안타까운 것은 이들이 공공재라고 외칠수록 집값 안정은 오히려 멀어질 것이라는 점이다.
허원순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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