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뉴잉글랜드 지역에 사는 제임스는 건강하고 행복한 제빵사였다. 동네 단골 손님들과 활발히 어울렸고, 친구도 많았다. 하지만 복권에 당첨돼 거액을 쥐게 되자 막연히 ‘좀 근사하게 살아보자’는 생각에 직장을 그만두고 해안가 부촌으로 이사했다. 더 행복해질 줄 알았던 제임스는 당뇨병과 고혈압, 비만, 스트레스에 시달리게 됐다. 외로웠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사랑했던 친구들과 직업을 버리고 사람들이 커다란 집 안에만 틀어박혀 지내는 동네로 이사했죠. 외로워요.”
정말 외로움이란 감정만으로 사람에게 질병이 생길 수 있을까. 2014년 12월부터 2017년 4월까지 미국의 19대 공중보건위생국장을 지낸 비벡 H 머시는 신간 《우리는 다시 연결되어야 한다(원제:Together)》에서 단언한다. “그렇다. 외로움(loneliness)은 하루 15개비 담배만큼 해롭다.”
공중보건위생국장은 미국에서 ‘국가 주치의’로 불리는 자리다. 저자는 역대 미국 공중보건위생국장 중 처음으로 외로움을 국가 특별집중관리 질병으로 지정했다. 외로움이 알코올·약물 중독, 폭력, 우울증, 불안감 등 현대 사회에 나타난 여러 문제의 근본 원인이자 원인을 제공한 요소라고 지적한다.
이 책에선 외로움과 고독(solitude)이 다르다고 설명한다. 외로움은 원치 않는 불행, 감정의 고통을 부른다. 고독은 평화롭게 혼자 있거나 자발적으로 고립을 택한 상황이다. 고독은 자신을 돌아보는 기회를 준다. 외로움은 각종 질병을 몰고 오는 절망이다. 저자는 “외로움으로 인한 질병은 일반적인 신체 질환보다 더 좋지 않은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고 강조한다. 또 “외로움의 문제를 해결했을 때, 질병이나 신체적 고통을 완화하거나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덧붙인다.
저자에 따르면 2018년 비영리 민간 건강재단인 카이저가족재단이 벌인 설문조사에서 미국인의 22%, 영국 성인의 23%, 일본 성인의 9%가 “외롭거나 사회적 고립감을 느낀다”고 답했다. 이는 미국 내 당뇨병에 걸린 사람 수와 흡연자 수보다 많은 수치다. 저자는 “외로움이야말로 세계적으로 퍼지고 있는 전염병”이라고 진단한다.
외로움을 증폭시키는 요인 중 첫손에 꼽힌 건 SNS다. 겉으로는 초(超)연결이지만 그 안에서 감정 소통 없이 홀로 떠돈다. 이런 현상은 아동·청소년에게 가장 큰 악영향을 준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노년층은 오프라인 교류가 줄어들면서 건강 악화 위험에 과거보다 더 쉽게 노출된다.
외로움은 약물중독 치료, 정신질환 재활 등을 포기하게 한다. 환자의 치료 의지를 꺾고, 가족 관계를 더 큰 파탄으로 몰고 간다. “외로움은 나약한 사람들이나 겪는 단순한 감정”이란 편견이 외로움을 더욱 부추겨 사람을 어둠 속에 가둬 버린다.
“외로움과 폭력은 남매 같은 사이”라고도 말한다. 저자는 “집단 총기 난사범부터 연쇄살인범까지 강력범죄자의 배경을 조사한 결과 외로움의 증거가 드러났다”며 “누군가에게 ‘거부당했다’는 기분을 느끼는 순간 거부당한 사람들은 자신을 거부했다고 느낀 상대방에게 맹렬히 분노하거나 폭력성을 드러내는 경향이 있다”고 강조한다.
이 책에서 내놓은 치유법은 간단하다. 외로움이란 병을 고치려면 오프라인의 연결과 소통, 공감을 늘리면 된다. 자신의 아픔을 드러내는 대화도 필요하다. 저자는 “우리는 온라인을 통해 24시간 연결될 수 있지만, 온라인에서 드러내는 모습들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 자신의 진짜 모습이나 취약성을 드러내기 힘들게 한다”며 “연결을 위해서는 자신의 취약성과 외로움의 경험을 사회적으로 공유할 필요가 있다”고 역설한다.
이미아 기자 mi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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