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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도 한 번 나도 한 번/ 누구나 한 번 왔다가는 인생/ 바람 같은 시간이야/ 멈추지 않는 세월/ 하루하루 소중하지/ 미련이야 많겠지만 후회도 많겠지만/ 어차피 한 번 왔다가는 길/ 붙잡을 수 없다면/ 소풍가듯 소풍가듯/ 웃으며 행복하게 살아야지.’(가사 전문)
쿵쿵자짜~ 쿵쿵자짜~ 반복되는 리듬에 걸쳐진 일상의 습생을 디테일하게 얽은 가사, 이것이 ‘소풍 같은 인생’의 인기 열쇠다. 여기에 가늘고 맑게 여운을 이어가는 추가열의 목소리는 어찌할꼬. 이 노래를 음유하다 보면 천상병 시인(1930~1993)의 시 ‘귀천’이 입안에 맴돌고, 그의 부인 문순옥(1935~2010)이 판을 펼쳐놓았던 인사동의 찻집 귀천(歸天)이 눈에 아른거린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추가열이 부른 ‘소풍 같은 인생’ 노래 2절로 이 시를 멜로딩하면 어떨까.
강화군 양도면 건평리 889에 가면 ‘천상병귀천공원’이 있다. 그는 일본 효고현에서 출생해 서울에서 타계했는데, 강화에서 그를 추모하는 터를 연 것이다. 이곳에 ‘소풍 같은 인생’ 노래비를 곁들이면 흥이 더할 듯하다. 이곳에 가면 ‘귀천’시를 떠올리게 하는 서해바다 노을빛이 타오르고, 시인과 가수가 어우러지는 감흥이 샘솟는다. 필명을 심온(深溫)으로 쓴 천상병은 1967년 동백림사건(독일 동베를린 간첩사건)에 연루돼 6개월여의 옥고를 치렀으며, 1993년 간경화로 타계했다. 그가 치른 옥고의 죄는 친구 강빈구에게 막걸리값으로 500원, 1000원씩 받아 썼던 돈이 공작금이었다는 것. 이후 천 시인은 1970년 무연고자로 오해받아 서울시립정신병원에 수용됐는데, 당시 지인들은 그가 불귀의 객이 됐다고 생각해 유고시집 ‘새’를 발표했다. 그 후 1972년에 그의 손을 잡은 평생 인생 소풍의 반려가 친구의 여동생 문순옥이다. 그들은 소설가 김동리의 주례로 백년가약을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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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차영 < 한국콜마 전무·여주아카데미 운영원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