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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현 기자의 생생헬스] 국내 조현병 환자 30여만명…치료 늦으면 뇌기능까지 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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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의 1% 정도가 조현병을 앓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국내 인구로 환산하면 50만 명가량이 조현병 환자라는 의미다. 국내에는 이보다 환자가 적다는 분석도 있는데 이를 고려해도 조현병 환자는 30만~40만 명으로 추정된다.”


지난달 말 한국과학한림원이 연 원탁토론회에서 전문가들은 이렇게 분석했다. 국내에 조현병 환자가 많지만 상당수가 치료받지 못한 채 방치돼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취지다. 국내 정신질환자의 정신건강 서비스 이용률은 22.2%다. 캐나다 46.5%, 미국 43.1%, 벨기에 39.5%, 뉴질랜드 38.9% 등 주요국에 비해 상당히 낮은 수준이다. 정신질환자 스스로 질환이라고 인지하지 못하는 데다 정신질환이 있어도 스스로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환자가 많기 때문이다. 조현병은 뇌 기능에 문제가 생기는 질환으로 일찍 병을 찾아 초기에 치료하면 일반인처럼 생활할 수 있다. 조현병의 원인과 증상 등을 알아봤다.
정신분열병으로 불리던 조현병
2016년 서울 강남역 살인사건, 지난해 경남 진주 아파트 방화살인사건 등 조현병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는 때는 안타깝게도 이 질환을 가진 사람이 범죄를 저지를 때다. 이런 조현병에 대한 인식 때문에 조현병은 위험한 병이라고 막연한 두려움을 가진 사람이 많지만 평생 유병률이 인구의 1%가량일 정도로 비교적 흔한 질환이다.

과거 정신분열병으로 불린 조현병은 뇌 기능이 제대로 조율되지 않는 질환이다. 느슨해지거나 너무 팽팽한 현악기의 줄을 잘 조율하면 아름다운 소리를 낼 수 있는 것처럼 질환이 있어도 충분히 회복할 수 있다는 의미로 조현병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조현병은 현악기의 줄이 조율되지 않은 상태와 같은 질환이다. 급성기 조현병 환자는 대개 환청, 망상 등의 증상 때문에 주변 사람을 난처하게 한다. 스스로를 잘 돌아보지 않고 불합리한 행동을 하는 것도 조현병 환자들의 증상이다.

조현병은 10대 후반에서 30대에 주로 발병한다. 조현병이 발병하기 전에는 뇌가 제 기능을 하지만 청소년기를 지나면서 기능이 떨어지고 이후 뇌 기능이 많이 약해져 병원을 찾은 뒤 진단되는 환자가 많다. 이후 증상이 나아졌다가 재발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만성화된다. 최종적으로는 치매와 비슷한 증상을 호소해 과거에는 조기치매로도 불렸다.

조현병이 진행하면 뇌 실질이 위축되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뇌는 더 많이 손상된다. 일찍 치료할수록 뇌가 덜 망가져 기능을 잘 회복할 수 있다. 약물치료, 심리·행동치료 등을 하면 호전된다. 치료를 시작하는 시기가 중요한 이유다.
환자 스스로 병을 인정 안 해
조현병을 조기에 치료하려면 환자가 적극적으로 치료에 임해야 한다. 하지만 대다수 조현병 환자는 병이 있다는 사실을 모르거나 인정하지 않는다. 치료실 문턱을 넘는 것조차 어렵다.

이때 보호자의 역할이 중요하다. 환자를 치료하겠다는 적극적인 의지를 갖고 진료실로 이끌어야 한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환자가 충격을 받거나 원망을 들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병원 방문을 꺼리는 경우가 많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와의 대면은 조현병 치료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진료실에 환자가 들어섰다면 긍정적 상황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일단 병원을 찾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조현병 치료가 늦어지면 뇌가 망가져 증상이 심해진다. 치료는 더 어려워진다. 조현병을 처음 호소하는 시점인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에 정신건강 상태를 주의 깊게 살펴봐야 한다. 청소년기에 나타나는 일탈 등도 조현병의 증상일 가능성이 있다.

배승민 가천대 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과거와 달리 신경전달물질 도파민의 불균형 상태를 해소할 수 있는 약물이 다양하게 개발돼 환자가 치료 의지만 있다면 효과적으로 치료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소아나 청소년은 정신기능이 계속 발달하는 단계에 있기 때문에 증상을 오래 방치하면 학습 능력이 떨어지고 사회에 적응하는 능력을 익히는 데 어려움을 겪어 또래와 많은 차이가 벌어지게 되므로 조기 치료가 더 중요하다”고 했다.
약물 치료 꾸준히 받아야
조현병이 있으면 누군가 자신을 조종해 위험에 빠뜨리려고 한다는 피해망상, 스스로 엄청난 능력을 갖고 있다고 믿는 과대망상 등의 증상을 호소한다. 외부에서 아무런 자극이 없는데도 소리가 들리거나 냄새가 나는 것 같은 환각 증상도 많이 생긴다. 이런 증상이 6개월 넘게 지속되면 조현병으로 진단한다.

조현병으로 진단되면 약물치료를 꾸준히 받아야 한다. 당뇨 고혈압처럼 평생 관리하는 만성질환으로 인식해야 한다. 초기 단계인 급성기에는 약물을 충분히 투여해 증상을 빨리 호전시키는 게 목표다. 증상이 잘 조절되면 서서히 용량을 줄인다. 이후 개선된 상태를 오랫동안 유지하면서 재발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약물을 사용할 때는 부작용을 줄이고 효과를 높이는 것을 치료 목표로 삼는다. 모든 약물이 마찬가지지만 조현병 치료약도 일부 부작용이 있다. 약을 먹으면 졸리거나 입마름 등의 증상을 호소할 수 있다. 어지럼증, 변비, 체중 증가 증상이 생기기도 한다. 눈의 초점을 조절하는 기능이 느려지고 움직임이 둔해지며 손발이 떨리는 증상을 호소하기도 한다.

김종훈 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최근 개발된 약은 기존 약의 부작용은 개선하고 치료 효과는 더 높인 것이 특징”이라며 “환자가 약물 치료에 대한 두려움을 떨치고 계속 치료받아 일반인과 같은 일상생활을 할 수 있다는 의지를 다져야 한다”고 했다.
마음병 아니라 뇌병변으로 인한 질환
조현병이 왜 생기는지는 명확히 알려지지 않았다. 조현병에 취약한 상태에서 태어난 사람이 극심한 스트레스, 트라우마 등 심리적·환경적으로 조현병이 생기기 쉬운 상황을 만나면 발병할 확률이 높다. 뇌 기능에 문제가 생기는 질환이지만 심리적·환경적 영향도 받는 질환이다.

조현병은 뇌에서 분비되는 도파민이라는 신경전달물질이 지나치게 많이 나오는 것과 관련이 있다. 도파민이 많아지면 망상 환청 등을 유발한다. 뇌전증 치료제는 대부분 도파민이 지나치게 많이 나오는 것을 막아주는 약이다. 조현병은 도파민 외에 뇌에서 나오는 행복 호르몬으로 불리는 세로토닌, 노르에피네프린, 글루타민 등의 균형이 깨지는 것과도 연관이 있다.

배 교수는 “최근에는 조현병이 누구에게나 동일한 기전과 예후를 보이는 질환이 아니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며 “다양한 유전자가 조현병 발병에 영향을 미치고 사회 환경적 요인과 만나 경과와 증상이 바뀐다고 판단한다”고 했다. 그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환자 스스로 치료 의지를 다지고 조기에 치료하는 것”이라며 “치료 시기를 놓쳤더라도 지속적으로 관리 받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bluesk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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