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매도의 수난시대입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상승장에 ‘베팅’한 투자자들은 (코로나19 공포가 극에 달했던 3월말에 시작했다면) 엄청난 차익을 거뒀습니다. 반면 공매도로 주가 하락에 ‘베팅’한 투자자들은 손실만으로도 충분히 마음 아픈데 조롱의 대상까지 됐습니다. 거래량의 상당 부분이 공매도였던 미국 전기자동차 기업 테슬라는 공매도 세력을 조롱하듯이 10일 1544.65달러로 장을 마쳤습니다.
‘공매도는 끝났나?’는 궁금증에 답변을 해주는 듯한 사례가 나왔습니다. 유럽의 유명 헤지펀드 운용사이자 공매도 강자로 꼽히는 영국 랜스다운 파트너스(Lansdowne Partners)가 공매도 전략을 구사하던 대표 펀드(Lansdowne Developed Markets Fund) 판매를 중단한다는 발표입니다. 랜스다운의 주력(flagship)으로 꼽히며 28억달러(약 3조4000억원)를 운용하는 대형 펀드입니다.
이 펀드는 이른바 롱쇼트 전략, 유망한 주식은 사고(long) 앞으로 주가 하락 가능성이 높은 주식은 공매도(short)해 수익을 내는 구조입니다. 공매도가 수익률을 좌우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입니다.
그런데 이 펀드는 올 들어 지난 6월까지 공매도 실패로 23%의 손실을 냈습니다. 지난해 수익률은 1.3%였다고 합니다. 유럽의 대형 헤지펀드 운용사가 대표상품으로 내걸기에는 참으로 처참한 수준입니다. 특히 랜스다운 파트너스가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영국 모기지은행 노던록 주식을 공매도해 막대한 차익을 거뒀던 헤지펀드 운용사라는 점을 생각한다면 더욱 그렇습니다. 최근까지도 공매도에 열심이었던 운용사 중 하나로 꼽힙니다.
코로나19 시대에 공매도가 설 자리를 잃었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세계 각국 중앙은행들은 막대한 돈을 풀어 기업들의 생명줄을 연장해 주고 있습니다. 어마어마한 유동성은 테슬라 같은 ‘꿈을 먹고 사는 기업’들에게 흘러들어가 연일 주가를 끌어올리고 있습니다. 좀처럼 공매도 대상을 찾기가 어려운 상황입니다. 기업 실적을 중시하는 ‘전통적인’ 투자자들에게 테슬라처럼 실적 대비 주가가 급등한 기업은 앞으로 주가가 하락할 가능성이 높으니 공매도 대상이겠지만, 막상 시장에서는 정반대입니다. 테슬라 주가가 1000달러를 넘으며 ‘천슬라’ 별명을 얻은 지 얼마 되지 않은 10일 1500달러를 돌파할 정도니까요. 테슬라 주식을 매입한 투자자들은 매일 행복했겠지만, 공매도한 투자자들은 막대한 손실을 봤을 것입니다.
랜스다운 파트너스는 지난 4월만 해도 저조한 실적을 내는데도 주가가 고평가된 기술기업, 코로나19로 피해가 큰 항공업종 기업을 공매도해 수익을 올릴 수 있다고 자신했습니다. 이런 기업들의 주가가 지난 3월말 대비 얼마나 뛰었는지 생각해보면, 랜스다운 파트너스의 처참한 실적도 짐작이 갑니다.
랜스다운 파트너스는 지난 6일 기관투자가들에게 보낸 서신에서 4월과는 정반대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공매도로 수익을 창출하거나, 주식 매수의 위험성을 회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기 어렵다는 언급이 있었다고 합니다. 공매도가 성공하려면 주가가 앞으로 떨어질 주식을 찾아야 하는데, 유동성 덕분에 죄다 오르는 분위기가 언제 끝날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경기 회복 과정에서 부침이 있긴 하겠지만 더 악화될 가능성이 낮아 보인다는 점, 제로금리 때문에 적절한 기업가치를 평가하기 어려워졌다는 점 등을 공매도 포기 이유로 들었습니다.
헤지펀드의 몰락이 가속화할 것이라는 예상도 나오고 있습니다. 금융정보업체 헤지펀드 리서치에 따르면 3조달러 규모의 헤지펀드 중 28%가 공매도 전략을 쓰고 있기 때문입니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공매도 투자자들을 조롱하기 위한 반바지를 제작해 판매했습니다. 공매도와 반바지 모두 영단어로 ‘short(s)’라는 데에서 착안한 언어유희입니다. 이 반바지는 ‘완판’됐습니다. 그동안 테슬라는 현재 주가가 실적 대비 과도하다고 여긴 공매도 세력의 집중 ‘공격’ 대상이었습니다. 그러나 현재까지 공매도 전쟁에서 승자는 테슬라네요.
이고운 기자 cca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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