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장편소설 《줄리아나 도쿄》로 지난해 ‘오늘의 작가상’을 받은 한정현 작가가 첫 소설집 《소녀 연예인 이보나》(민음사)를 출간했다.
이들 작품 중 여섯 편은 혈연과 우정, 연애로 관계를 맺는 인물들이 교차하거나 등장 인물의 이름을 공유하며 마치 연작소설처럼 긴밀하게, 때로는 느슨하게 영향을 주고받는다. 예를 들어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우리의 소원은 과학 소년’ 속 남장 소설가 경준의 본명은 ‘경아’다. 이 이름은 2019년을 배경으로 한 ‘조만간 다시 태어날 작정이라면’ 속 등장인물의 이름과 같다. 표제작 《소녀 연예인 이보나》에서 주희가 1920년대 극단 동지이자 잊을 수 없는 사람이었던 ‘이씨’에게 붙여주고 싶었던 이름 ‘이보나’는 ‘오늘의 일기예보’ 속 주인공이자 현시대를 살고 있는 ‘나’의 이름이 된다. 같은 이름을 통해 마치 전생과 현생이 이어지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이런 구성의 의미는 작가가 《소녀 연예인 이보나》 속에서 “경험해 보지 못한 세계는 좋아하는 사람들을 통해 봐야 한다”고 서술한 문장으로 요약된다. 이 문장을 통해 작가는 주변 사람들이 살아온 과거 시간과 내가 현재 살아가고 있는 시간이 어떤 부분에서 연결돼 있음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한 작가는 ‘작가의 말’에서 “《소녀 연예인 이보나》는 1920년대를 살았던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죽음 이후 그들이 태어나 살아온 시간과 만나고 싶어 했던 마음에서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런 시공간적 연결 속에서 각 소설은 작가가 찾아낸 시대와 역사 속 폭력을 반복해 보여준다. 소설들은 그런 폭력 속에서도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정체성을 지키려 했던 인물들에게 끊임없이 이름을 붙이고 목소리를 부여하며 깊은 울림을 전한다.
은정진 기자 silve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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