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이 다음 주로 예정된 정견발표를 시작으로 첫 한국인 출신 세계무역기구(WTO) 사무총장 당선을 위한 선거 운동에 돌입한다. 일본 측 견제를 뚫어야 하는 과제도 안고 있다.
7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WTO 사무국은 오는 15~17일을 WTO 사무총장 후보 정견발표 일정으로 회원국에 공지했다.
이 자리에서 유 본부장은 비전을 발표하고 질의응답 시간을 가질 예정이다. 아직 구체적인 회의 방식은 확정되지 않았지만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여파를 감안해 화상회의 방식으로 정견발표가 진행될 수도 있다.
현재 WTO 사무총장 후보는 유 본부장을 포함해 5명이다. 등록 마감일은 오는 8일(현지시간)이기 때문에 후보자는 더 늘어날 수 있다. 호베르투 아제베두 현 사무총장도 2013년 경선 당시 마감일에 맞춰서 후보로 등록한 바 있다.
현재 입후보 명단을 보면 나이지리아의 응고지 오콘조-이웰라(Ngozi Okonjo-Iweala) 전 재무장관, 이집트의 압델-하미드 맘두(Abdel-Hamid Mamdouh) 전 WTO 서비스국 국장, 멕시코의 헤수스 세아데(Jesus Seade) WTO 초대 사무차장, 몰도바의 투도르 울리아노브스키(Tudor Ulianovschi) 전 주제네바 대사 등이다.
이번 WTO 사무총장 경선은 아제베두 사무총장이 개인적인 사유로 올해 8월31일 자로 물러나겠다고 사임 의사를 밝히면서 진행되는 것이다. 당초 임기 만료일은 내년 8월 말이었다.
통상 WTO 사무총장 선출 절차는 최대 9개월까지 걸린다. 전 사무총장이 돌연 사임을 결정한 만큼 WTO 사무국은 공백기를 최소화하기 위해 절차를 앞당겨 진행할 것으로 예상된다.
WTO 규정상 선거운동 기간은 3개월이다. 이 기간에 인지도를 확보하고 WTO 주요 이슈 관련 논의에 참여하게 되지만 현재 여건상 긴 시간이 주어지지는 않을 수도 있다.
이후 회원국 협의를 거쳐 지지도가 낮은 후보를 탈락시키는 절차를 반복하게 되는데 이 과정도 약 2개월이 걸린다. 최종 선출은 WTO 일반이사회에서 단일 후보를 채택하면서 마무리된다.
우리 정부는 유 본부장이 충분히 국제적 인지도도 쌓은 만큼 경쟁력을 지닌 후보로 분류되기 때문에 해볼 만하다는 입장이다. 앞서 우리나라는 두 차례 WTO 사무총장에 입후보했고 이번이 세 번째 도전이다.
앞서 유 본부장은 선진국과 개도국 사이의 중견국(Middle power)으로서 한국의 역할을 강조하겠다고 주장한 바 있다. WTO 설립 이래 가장 큰 위기에 직면해 있기 때문에 회원국 간 갈등을 봉합할 수 있는 가교 역할이 필요하고, 한국이 이런 상황에 적임자라는 것이다.
관건은 일본의 견제다. 직접적인 반대 의사를 표하진 않았지만 에둘러 한국 출신의 사무총장이 나오지 않길 바라는 입장을 취하고 있어서다.
일본 정부는 이날 WTO 사무총장 선출에 관여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가지야마 히로시 경산상은 이날 오전 정례 기자회견에서 WTO 사무총장 선출 관련 질문에 "사무총장 선거는 금주 8일, 내일까지가 후보자 접수 기간이며, 현시점에서 5명이 입후보 의사를 표명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이같이 밝혔다.
가지야마 외무상은 "현재 코로나19 대응과 WTO 개혁 등 과제가 산적한 가운데 다각적 무역체제의 유지, 강화를 향해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는 인물이냐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런 관점에서 일본으로서도 선출 프로세스에 확실히 관여해가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언급해 사실상 한국인 총장 반대에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일본 정부는 유 본부장에 대해 아직 명확한 의사 표명을 하지 않고 있지만 수출규제 문제를 놓고 갈등하는 한국의 WTO 사무총장 후보를 달가워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앞서 요미우리신문은 7일 자 'WTO 사무총장 선거 혼전'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유 본부장에 대해 "무역전문가 경력을 내세운다"며 "한국과 수출관리 강화를 놓고 대립하는 일본이 어떻게 대응할지도 주목점"이라고 보도했다.
이에 따라 정부는 산업부와 외교부 등 관계부처가 참여하는 범부처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유 본부장의 WTO 사무총장 입후보 활동을 적극 지원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강경주 한경닷컴 기자 quraso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