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저는
'이젠 한국은행까지 민주화하라니…'란 한경 칼럼(
https://www.hankyung.com/opinion/article/2020062448901)에서 헌법 119조2항에 나오는 '경제 민주화'란 말이 잘못 읽히고 있다는 지적을 소개했습니다. 이 말이 헌법에 처음 들어간 1987년 개헌 당시 국회 헌법개정기초소위 위원장을 맡았던 현경대 전 민정당 의원의 주장이었습니다. 이 칼럼이 나간 뒤 적지 않은 독자 분들이 좀더 자세한 정보를 문의하셨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우리 헌법의 '경제 민주화'에 대한 진실과 오해를 좀더 자세히 소개하려고 합니다.
1987년 개헌 때 삽입된 '경제 민주화' 1987년 개헌은 국민들의 민주화와 직선제 개헌 요구를 당시 여당인 민정당이 받아들인 '6.29 선언'에서 출발합니다. 이때 헌법을 개정하면서 경제조항이 수정됩니다. 헌법 119조 1항과 2항입니다. 1항은 '대한민국의 경제질서는 개인과 기업의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를 존중함을 기본으로 한다'고 명시합니다. 2항은 ‘국가는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 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 고 규정합니다. 기타 조항은 종전 헌법과 큰 차이가 없습니다.
여기서 쟁점은 119조2항입니다. 이 조항에서 '경제의 민주화'란 표현은 당시 국회 헌법개정기초소위에서 결정됐습니다. 김종인 현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이 주도한 민정당의 헌법개정 경제분과위원회는 이 조항 초안에 '경제의 민주화'가 아닌 '산업의 민주화'란 표현을 담았었다고 합니다. 당시 야당에선 이와 관련해 특이한 주장은 없었고요. 그런데 개헌안을 논의하던 국회 헌법개정기초소위에서 "산업의 민주화란 말이 도대체 무슨 의미냐"는 지적이 나오면서 논란이 됐습니다. 논쟁 끝에 차라리 의미를 명확히 전달하기 위해 '경제의 민주화'란 표현으로 바꾸기로 합니다. 이에 대해 당시 김종인 민정당 의원도 이견이 없었다고 합니다.
"관치 탈피하자는 경제운영의 민주화 의미" 헌법개정기초소위에서 '경제의 민주화'란 표현을 쓸 때의 기본 취지는 이랬다고 합니다. 다음은 헌법개정소위 위원장을 맡았던 현경대 전 의원의 전언입니다. "119조2항의 경제 민주화라는 말은 정치 민주화 조류에 맞춰 경제운영도 이젠 정부 주도에서 민간 주도로 바꾸자는 의미로 쓴 것이다. 관치를 탈피해 경제운영도 민주화하자는 뜻이었다. 이걸 불평등 경제를 시정하는 정부 역할을 강화하고, 평등주의를 강조하는 사회민주주의적 시각으로 해석되는 것은 오독(誤讀)이다" 이런 주장은 현 전 의원이 1988년 박문각에서 출판한 개정 헌법 해설서인《신헌법》에서도 나옵니다. "경제주체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는 정부 기업 가계라는 경제주체 가운데 종전에는 정부주도 경제운용에 치우쳤으나 민간주도로 전환하여 효율성을 극대화시킴과 아울러 사용자와 노동자라는 노동경제상의 양대 주체간의 협조를 통한 산업평화와 노사공영의 이룩을 도모하려는 것이다"
이런 사실은 헌법 119조2항을 정독해 보면 납득이 갑니다. 이 조항은 말미의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의 전제로 3개의 조건을 병렬적으로 제시합니다. '국가는'을 주어로 시작하는 이 문장에서 제시한 세가지 조건은 '①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②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③경제주체 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입니다. ①과 ②는 복지국가와 서구식 사회적 시장경제 개념으로 경제 민주화 이념을 이미 담고 있습니다. 따라서 같은 의미의 민주화라면 굳이 ③에서 동어반복을 할 필요가 없었겠지요. 이런 맥락에서 보면 현 전 의원의 '경제 운영의 민주화' 주장이 설득력이 커 보입니다.
"평등 경제의 근거로 잘못 쓰는 것 아쉬워" 우리 헌법에 규정된 '경제 민주화'가 이런 의미인데도 시간이 흘러 토지 공개념, 대기업 해체, 이익 공유제와 같은 과격한 주장의 근거로 활용되고 있는 것은 안타깝다고 현 전 의원은 말합니다. 특히 이런 정치적 주장을 당시 개헌 때 이 조항을 직접 다듬었던 김종인 전 의원이 앞장 서서 하고 있는 현실은 역사의 아이러니라고 해야할 지 모르겠습니다.
차병석 수석논설위원 chab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