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상에서 동료 외교관의 성적 비위를 폭로했다가 1·2심에서 벌금형을 선고받은 한 외교부 공무원에 대해 대법원이 무죄 취지의 판결을 내렸다.
대법원 제2부(주심 노정희 대법관)는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A씨의 상고심에서 일부 유죄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무죄 취지로 서울동부지방법원에 돌려보냈다고 25일 밝혔다.
주한 영국대사관 직원이었던 A씨는 2016년 12월에 동료 외교관 B씨의 성추행 의혹 등 내용이 담긴 기고문을 한 인터넷 매체에 게재했다. A씨는 “(B씨가) 여직원과의 스캔들은 물론이고, 회식 후 여직원의 몸을 만지며 성추행을 일삼았다” “(B씨가) 수많은 여성을 희롱했다” 등 내용을 썼다.
검찰은 A씨가 B씨를 비방할 목적을 갖고 허위사실을 유포했다고 보고, 정보통산망법상 명예훼손 혐의로 A씨를 기소했다. A씨는 “허위사실을 적시하지 않았고, 비방의 목적이 아니라 공공의 이익을 위해 글을 작성해 위법성이 없다”고 맞섰다.
1심은 A씨에게 벌금 150만원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A씨가) 소문을 들은 것 외에 B씨 측에 그 진위 여부를 확인하거나 기관 등에 사실확인을 위한 조치를 취한 사실이 없다”고 판단했다.
항소심은 1심에서 유죄라고 판단한 A씨의 공소사실 가운데 일부에 대해서 “허위사실에 해당한다고 단정할 수 없고, A씨가 위 내용이 사실이라고 인식하는데 정당한 이유가 있었다”고 판단했다. 2심도 유죄 판결을 이어갔지만 형량을 벌금 50만원으로 감형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A씨에 대해 무죄 취지의 판결을 내렸다. 대법원은 “적시한 사실이 공공의 이익에 관한 것인 경우에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비방할 목적이 부정된다”고 설명했다. 정보통산망법은 ‘사람을 비방할 목적으로 공공연하게 사실 혹은 허위사실을 드러내어 타인의 명예를 훼손할 경우’를 처벌하도록 규정한다. 이 가운데 ‘비방할 목적’이라는 구성요건을 충족하지 못할 경우 이 조항을 적용해 처벌할 수 없다는 것이 대법원 취지다.
재판부는 △A씨와 B씨가 함께 근무한 경험이 없고 △A씨가 ‘외교부가 외교관의 비위행위에 대해 강력한 처벌을 하지 않고 유야무야 넘어가는 행태를 보여왔다’는 취지로 해당 내용을 언급한 점에 주목했다.
대법원은 “B씨는 외교부 소속 고위 공무원으로 공적 인물에 해당하고, 공무원의 소속 직원에 대한 비위행위는 일반 국민들의 검증과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있다”며 “A씨는 다른 해외 대사관 소속 외교관의 성적 비위행위 등이 언론에 보도돼 국민 관심사가 되자, 고위 외교관들의 권한 남용과 비위행위 등을 공론화하고 개선을 촉구하는 취지로 이 글을 작성한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또 원심에서 유죄로 판단한 ‘수많은 여성을 희롱했다’는 표현에 대해서도 “다소 과장된 표현이 사용된 것”이라고 봤다. 대법원은 “A씨가 개인적인 감정이나 경제적 이해관계 등으로 B씨를 비방할 만한 동기를 찾을 수 없다”며 “재판을 다시 하라”고 했다.
이인혁 기자 twopeopl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