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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땅 짚고 '기업 울리는' 서울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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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지변에 맞먹는 위기 아닙니까. 살아 보겠다고 내놓은 땅이잖아요. 그런데 거기다 공원을 조성하겠다고 초를 쳐 버리면 누가 관심을 갖겠어요.” 얼마 전 저녁 자리에서 대한항공의 ‘송현동 땅’ 얘기가 나오자 한 대기업 임원이 한 말이다. 그는 “기업의 사정을 조금이라도 고려했다면 서울시가 공원화를 추진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지난 10일 이뤄진 송현동 땅 매각 입찰 결과는 예상대로였다. 참여 의사를 밝혔던 15개 업체가 모두 불참했다. 서울시가 앞서 송현동 부지 일대에 대한 문화공원 지정 및 강제수용 추진 의사를 공식화했기 때문이다. “매입한 값에도 못 미치는 가격에 (서울시에) 수용당할 수 있는데, 어떤 바보가 참여하겠냐”는 얘기가 나왔다.

대한항공엔 다른 선택지가 없었던 모양이다. 이틀 뒤 국민권익위원회에 “송현동 부지 매각 추진이 서울시의 일방적 행정절차로, 심각한 피해를 보고 있다”는 내용의 고충 민원을 제기했다.

되짚어 보면 ‘웃픈’(우습고 슬픈) 일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전 세계적 확산은 대부분의 하늘길을 끊어놨다. 대한항공의 피해는 숫자가 보여준다. 6월 둘째 주(8~14일) 기준 국제선 운항은 645편에 그쳤다. 지난해 같은 기간(2115편) 대비 약 70% 줄었다. 승객 수는 1만6597명으로 지난해 39만5375명보다 96% 급감했다.

항공업은 기간산업이다. 미국은 ‘74조원’을 쏟아붓기로 했다. 우리 정부도 국책은행을 통해 항공사를 돕기로 했다. 대한항공엔 1조2000억원의 긴급 유동성이 공급된다. 정부 지원엔 ‘자구 노력’이라는 조건이 따르는 법이다. 대한항공이 5000억~6000억원의 현금을 마련할 수 있다고 판단해 송현동 땅 매각에 나선 배경이다.

그런데 ‘공원화’라는 변수가 등장했다. 서울시의 방침에 머쓱해진 건 송현동 부지 매각을 은근히 압박해온 채권단이다. 산업은행 관계자는 “도심에 녹지와 공원이 없는 것도 아니고, 할 말은 참 많지만…”이라며 말을 아꼈다. 장관을 지낸 한 인사는 “속된 말로 다 같은 편인 정부, 서울시, 산업은행의 손발이 안 맞아 기업만 어려움을 겪는다”며 “오죽하면 기업이 정부 기관인 권익위원회를 찾아가 억울함을 풀어달라고 했겠느냐”고 말했다.

땅에 얽힌 서울시와 기업 간 갈등이 처음도 아니다. 롯데쇼핑이 복합쇼핑몰을 짓기 위해 2013년 서울시로부터 1972억원에 사들인 상암동 부지는 7년째 착공조차 못하고 있다. 땅을 매각한 시가 인근 전통시장 상인의 반발 등을 이유로 인허가 절차를 진행하지 않은 영향이다. 기업에 땅만 팔아 놓고 정작 할 일을 하지 않는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변변한 쇼핑시설이 없어 불편을 겪던 상암동 주민들의 불만도 커졌다.

감사원은 지난해 말 서울시가 부당하게 건축허가 심의를 지연시켰다며 “상암동 롯데몰의 세부개발계획안 심의를 조속히 처리하라”고 통보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에겐 “법적 근거 없이 심의를 장기간 보류하는 등 도시계획결정 업무를 부당하게 처리하는 일이 없도록 하라”고 ‘주의’를 내렸다.

땅을 둘러싼 이런 갈등은 서울시가 조금만 전향적으로 생각한다면 어렵지 않게 풀 수 있는 문제다. 대한항공과 롯데쇼핑은 특히 코로나19 사태로 어려움을 겪는 기업들이다. 감사원에 이어 이번엔 권익위의 권고가 나온 뒤에야 공원화 지정 추진이라는 방침을 거둬들일 것인지 묻고 싶다. 큰 꿈을 꾸는 정치인으로 알려진 박 시장이 기업 친화적이라는 평가도 받길 기대해 본다. 어쩌면 차기 대선주자 선호도 1%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이 될지도 모른다.

bad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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