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강점기 이후 한반도에서 전염병이 가장 많이 창궐한 때가 6·25전쟁 기간이었어요. 이 시기 전염병을 막으려는 노력은 한국 보건의료 체계의 기틀을 닦은 동시에 세계에도 영향을 미쳤죠. ‘전투’가 아니라 전염병을 주제로 6·25전쟁을 꼭 다뤄야겠다고 생각한 이유입니다.”
이임하 성공회대 동아시아연구소 교수(54·사진)는 지난 15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저서 《전염병 전쟁》을 소개하며 이같이 말했다. 지난 10일 출간된 이 책은 6·25전쟁을 전염병이라는 시각으로 조명한 최초의 책이다. 전염병과 전쟁의 연관성을 다룬 연구는 이전에도 수차례 있었지만, 여러 전쟁 가운데 6·25전쟁 시기의 전염병만 연구해 책을 펴낸 것은 이 교수가 처음이다.
이 교수가 6·25전쟁을 전염병과 연관지어 연구하기 시작한 것은 2009년이다. 6·25전쟁을 꾸준히 연구해온 그는 당초 국내 인구 변동을 주제로 해외 사료를 찾고 있었다. 미군 기록물을 보던 중 그는 6·25전쟁과 관련해 국내에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당시 미군이 한국 ‘국민방위군’에서 발생한 전염병 발진티푸스를 심각하게 여기고 있었다는 내용이다.
국민방위군은 전쟁터 병력 충원을 목적으로 1950년 12월 민간인을 동원해 편성됐지만, 관리체계 미비와 부정부패로 약 9만 명의 희생자만 남긴 채 이듬해 5월 해체된 군대다. 이 교수는 “그동안 국내에선 국민방위군 사망자 대부분이 추위와 배고픔 때문에 세상을 떠난 것으로 알려졌는데 미군 기록물에선 전염병을 주요 원인으로 지목한 것”이라고 차이를 설명했다.
무엇이 사실일까. 이 교수는 국민방위군에 동원됐던 생존자를 직접 찾아나섰다. 결론은 미군 기록물의 승리. 실상을 증언한 생존자마다 추위·배고픔보다는 전염병을 집단 사망의 원인으로 지목했다.
6·25전쟁 시기 전염병의 심각성을 알게 된 이 교수는 전염병과 관련한 미군 기록물을 일일이 찾아 정리하기 시작했다. 영어를 번역해 옮겨야 하는 탓에 긴 시간이 필요한 작업이었다. 하지만 이 같은 노력을 기울인 덕분에 이 교수는 국내 보건의료 체계의 초기 확립 과정을 책에 담아낼 수 있었다.
그는 “오늘날 12세 이하 아동을 대상으로 하는 예방접종이 시작된 게 6·25전쟁 때”라며 “6·25전쟁에서 전염병 예방은 단순히 방역을 넘어 미국이 한반도에 민주주의 체제의 우월성을 과시할 수 있는 수단이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한국에서 시작한 예방접종 체계가 냉전이라는 체제 경쟁과 맞물리면서 현대 의료 체계를 갖춘 모든 나라의 예방접종 시스템으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6·25전쟁 전문가인 이 교수는 여성을 주제로 한 연구도 활발히 해왔다. 이번 책에도 6·25전쟁 시기 방역 과정에서 여성이 부당하게 겪어야 했던 차별적 성(性) 인식에 관한 내용이 담겨 있다. 이 교수는 “앞으로도 6·25전쟁과 여성에 대한 연구를 지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의진 기자 justji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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