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 취향이 1000가지라면 가전제품도 1000가지여야 한다.”
삼성전자가 가전제품의 공식 파괴를 선언했다. 다양한 소비자의 취향을 반영한 개인 맞춤형 제품을 대폭 확대키로 했다. 표준화된 몇 가지 제품 중 하나를 고르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던 가전제품 시장의 고정관념을 깨겠다는 뜻이다. 삼성전자의 가전사업을 이끄는 김현석 삼성전자 CE(소비자가전) 부문 사장(사진)이 ‘포스트 코로나’ 시장을 겨냥한 승부수를 던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삼성전자는 전 가전제품을 대상으로 ‘이제는 가전을 나답게’라는 통합 슬로건을 적용한다고 17일 발표했다. 슬로건 끝에 ‘삼성블루’ 색상의 마침표가 들어가는 것이 특징이다. 틀에 박힌 기존 가전제품 시장에 마침표를 찍겠다는 의미를 담았다. 삼성전자는 새로운 슬로건을 온·오프라인 매장 홍보물과 광고, 제품 카탈로그 등에 활용할 계획이다.
이번 슬로건은 ‘프로젝트 프리즘(Project PRISM)’의 일환이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6월 다양한 소비자의 취향과 삶을 반영한 제품을 내놓겠다며 프로젝트 프리즘 캠페인을 시작했다. 시장 반응을 보기 위해 처음으로 내놓은 제품이 비스포크(BESPOKE) 냉장고다. 제품 타입과 패널의 색상을 소비자가 마음대로 바꿀 수 있는 모듈형 제품이다.
비스포크는 비슷한 제품이 매대를 채웠던 냉장고 시장의 규칙을 바꿨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삼성전자가 지난 1월부터 5월까지 국내 시장에서 판매한 냉장고 중 60%가 비스포크 제품일 만큼 소비자 호응이 뜨거웠다. 비스포크 열풍에 힘입어 이 기간 삼성전자의 냉장고 매출도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0%가량 늘었다.
올 1월 등장한 ‘그랑데 AI’ 세탁기와 건조기도 프로젝트 프리즘의 성과로 꼽힌다. 이 제품의 진가는 구매 후 일정 시간이 지나야 드러난다. 인공지능(AI)이 소비자의 세탁과 건조 습관을 학습해 개별 소비자에게 최적화된 코스를 제안해 주기 때문이다.
남다른 취향을 가진 소비자를 겨냥한 제품군도 차근차근 늘리고 있다. 홈파티를 즐기는 소비자를 위한 포터블 인덕션 ‘더 플레이트’가 대표 사례로 꼽힌다. 삼성전자가 꼽은 차기작은 특수한 용도의 초소형 냉장고다. 주류를 보관하는 ‘와인큐브’와 ‘비어큐브’, 화장품만 집어넣는 ‘뷰티큐브’ 등을 준비 중이다. 의류청정기 ‘에어드레서’ 원리를 적용한 ‘신발관리기’ 출시도 임박한 상태다.
업계에선 삼성전자의 슬로건 발표를 김 사장의 ‘선전포고’로 보고 있다. 프로젝트 프리즘 제품군에 대한 실험을 끝내고 글로벌 마케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는 분석이다. 미국, 유럽 등 주요 글로벌 소비시장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후유증에서 벗어나는 시점에 대대적으로 신제품을 쏟아낼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김 사장은 올해 초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전자쇼 ‘CES 2020’에서 “향후 10년은 ‘경험의 시대’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개인의 라이프스타일에 스며들 수 있는 제품을 생산할 수 있는지 여부에 따라 업계 판도가 달라질 것이란 얘기였다. 그는 CES 행사장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프로젝트 프리즘 제품군을 지속적으로 확대할 계획”이라며 “기존 가전제품에 로봇 기술을 더한 신제품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송형석 기자 click@hankyug.com